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phapha May 07. 2020

코로나 육아, 뭐하고 놀았지?

아이랑 집에서 논 이야기

코로나의 여파로 한 달은 내내 집에만 머물렀던 것 같다.

이후에는 사람 없는 시간을 피해 몇 번 카페를 가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마스크를 다시 올려 썼던 기억도 있었지만 불안함에 아이와 집에 더 오래 머물기를 자처했다.

종종 참을 수 없는 커피의 유혹이 밀려오면 테이크 아웃을 해오거나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나가서 아이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시행 중인 현재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생각도 든다.

몇 일째 국내 확진자수가 '0'으로 집계되고는 있지만 서로 조심해야 빨리 코로나 사태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와 함께 길고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고민 고민했다.

도서관에 자주 놀러 가던 우리는 두 달째 문 닫은 도서관을 보며 늘 아쉬워했고, 지인에게서 받은 이백 여권의 전집 시리즈를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외동이다 보니 혼자 놀았던 시간들보다 늘 나와 신랑이 같이 놀아주었는데, 24시간을 내내 붙어 내 일을 아예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둘 다 즐거울 수 있는 놀이를 찾는 게 시급했다.

7살 집순이를 상대로 집에서 놀거리를 제공한다는 건 어찌 보면 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나의 인내심과 비례하는 놀이들이 많았으므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집에서 머물며 했던 놀이들을 정리해보면,




1. 쉐이프 게임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에 나온 게임인데 아이랑 5살 때부터 이 게임으로 어딜 가든 참 즐겁게 놀았다.

지하철에서 이동할 때도 놀기 쉽고, 장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너무 좋은 놀이다.

방법은 너무 간단하지만 각자의 창의력을 보태야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펜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내가 그린 그림위에 아이는 뛰는 천사를 그렸다>



2. 만화책의 선순환

작년 연말부터인가 아이가 만화책에 빠져 그림책 읽기는 평소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내려갔었다.

그때쯤이 포켓몬에 빠져 캐릭터를 줄줄 꿰고 있을 때니 만화에 흥미를 가질 만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염려되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만화책 시리즈들 (쿠키런 한자 런, 설민석의 한국사, 텐텐 북스 시리즈 등)을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나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어린이날 선물로 레이튼 미스터리 탐정사무소 4권을 고른 후에 (만화광 남편의 추천에 의해) 하루 만에 그 책을 다 읽고 다시 읽고 있다.

처음에는 만화책에 너무 빠져있는 게 아닐까, 요약된 정보를 습득하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생각하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놀아보면 은연중에 본인이 책에서 읽었던 정보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한자 런을 읽고 한자에 관심을 가졌고, 내가 한자 쓰기를 연습하면서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종이컵으로 쌓기 놀이를 하는데 모형을 만들면서 "엄마 이건 콜로세움이야" "우리 만리장성 만들어볼까" 하며 책 속에서 본 것을 응용했다.

책을 구매하는 것에는 관대하지만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이다보니 만화책은 선뜻 사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만화책과 그림책의 비율을 조금 조절한다면 만화책도 조금 너그럽데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컵 쌓기 같지만 콜로세움>




3. 루미큐브

보드게임에 딱히 흥미를 갖진 않았지만 루미큐브를 접하고 나서는 나는 동생과 엄마에게 전파하는 슈퍼 홍보자가 되었다.

몇 달만에 집에 놀러 온 부모님에게 루미큐브를 알려주고 흥미를 돋우기 위해 100원씩 내기한 것도 엄마가 빠른 습득을 한 이유에 한몫을 했다.

숫자만 보면 멀미가 나오는 나였지만 루미큐브에 몰입하는 나를 보고 신랑을 신기해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다가 내가 스도쿠 책까지 사서 풀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라니까.

아이와 매일매일 2시간은 루미큐브를 했다. 녀석이 제법 잘해서 내가 져주지 않아도 진심으로 패한 적이 많았는데 나처럼 숫자 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숫자와 친해지기 위한 좋은 게임 같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강력 추천한다. 우리는 외출할 때 꼭! 루미큐브를 챙겼다.

트래블 킷트를 사고 싶었는데 짠돌이 신랑이 극구 반대한다. 그러나 곧 살 것 같다.   

<매일 두 시간씩 양보없음>



4. 다양한 미술놀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맞춤인 미술놀이를 했는데 그중 반응이 좋았던 것이 유화물감으로 캔버스에 프린트된 숫자들을 채색하는 킷트였다.

개당 오천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인데 아이의 집중도도 향상시키고 작품(?)을 완성한 후에 집에서 전시회를 가지며 작품에 대한 의도(?)를 전해 들었다.

지루한 컬러링 대신 패턴으로 색칠하는 컬러링북을 발견하고는 같은 책을 두 권 구매했는데 빨간색이라도 자신만의 빨강으로 색을 완성하고 나중에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각자 색칠하고 있다.  

<픽셀북과 유화칠하기>




5. 공원 가서 아무거나 발견하기

안 쓰는 노트를 반으로 잘라 밑도 끝도 없지만 뭐라도 발견해서 노트에 테이프로 붙이며 놀았다.

집순이라 놀이터도 안 나가겠다는 걸 어떻게든 콧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집 뒤 작은 언덕으로 유인했다.

파브르 곤충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걸 노트에 붙이고 돋보기로 관찰해보기도 했다.

제대로 봄을 느낄 여력도 없이 이미 피어난 싹들을 돋보기로 관찰하고, 직접 만든 목걸이 노트에 열심히 기록을 하던 아이와 그렇게 또 시간을 보냈다.

<쓰레기였을지도 모르지만>



6. 걱정인형 만들기

아이의 칫솔 사건과 더불어 코로나가 밀려오는 바람에 잘 된 거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자연스럽게 칫솔 트라우마는 사라져 버렸다.

길고 긴 여정이 될 것 같아 두려웠지만 여하튼 마무리가 된 듯했다.

과테말라에서 온 아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걱정인형을 만들어보았는데, 코로나 좀 제발 사라져라. 그리고 칫솔 생각 안 나게 해 줘라고 빌었다.

걱정인형이 코로나 좀 데려가면 좋겠다고 열심히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그 바람이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효과를 보는 건가 싶다.  

<걱정인형아 우리 걱정 이제 가져가는거니>




7. 그 밖에는

샌드위치 만들어 먹기, 벽에 낙서하기, 흑설탕 스크럽 만들어서 사용해보기, 퍼즐 하기, 네모 아저씨 종이접기, 부루마블로 한 시간 버티기, 집 앞 정자에서 도시락 먹기, 보드 게임하기 (원카드, 도블), 크레파스로 향초 만들기, 점토로 인형 만들기, 타투하기, 스도쿠, 블록 대여해서 만들기, 아빠와 과학놀이, 색종이 책 만들기 등등     


<아이가 만들어준 시원한 아이스라테>



이렇게 적고 나니 둘이서 소소하게 뭔가를 많이 하긴 한 것 같다.

핸드폰이나 TV와 같은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기로 마음먹은 건 육아를 하면서 그림책 읽어주기와 함께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정부에서 이야기한 유치원 개학이 20일인데 2월 20일 봄방학을 기준으로 딱 90일 만에 유치원에 가게 생겼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도 만나보지 못한 채 방구석 생활을 한 시간들이 너무 더디게 흘러가고 있지만 모두가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코로나가 빨리 사라져서 나도 좀 혼자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길 희망한다.

  


@byphapha

매거진의 이전글 버티다 만나는 곳엔 희망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