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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Jul 04. 2022

익숙해질 섭섭함에 대해

부모의 자리

며칠 전 대학 동기들과의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퇴근 후에 집에 가는 길에 만났는데, 아들이 게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신을 보았는데도 시선을 피하고 숨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섭섭했는지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는 그 말에 다른 친구들은 서운했겠다, 엄마가 게임하는 거 싫어해서 그렇지 등등 다양한 답변 문자를 보내왔다.

아직 우리 아이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런 일을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네 엄마들과 <입학하기 전 집에서 꼭 배워야 하는 생활습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가장 우려했던 이야기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화장실 뒤처리 문제였다.

아이는 다행히도 매우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갖고 있던지라 큰 염려는 없었으나 화장실이라는 것은 특히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들에게는 지뢰밭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도 하루빨리 아이에게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혼자 뒤처리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나를 더 빨리 서두르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지만 아이는 1학년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하나씩 배워나갔다. 

가끔은 아이의 규칙적인 배변활동이 등교하는데 종종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는데 한 번은 마음이 급해 "별아 다 했어?"라고 말하자 아이가 "엄마, 나 혼자 할 수 있어" 라며 선을 그었다.

내가 마음이 급해 닦아주러 들어갈까 봐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로 건넨 말에 대학 동기의 섭섭함이 떠올랐다.

아이를 기다리며 화장실 문 앞에서 종종거리던 나는 웃펐다. 



이것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서 아이가 혼자 씻기 시작했다.

언제 씻어? 지금 씻자! 하며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아이와의 실랑이에서 해방되어 너무나도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씻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 남편에게 나는 이제 다 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학년 2학기가 되자 아이는 "엄마 나 학교 가방 알아서 챙겨갈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 가방, 허락 없이 열어보면 안 돼"등등의 말을 하거나 필통 속 연필을 혼자 깎아 챙기고 논술학원의 숙제는 스스로 풀어갔다. 알아서 하는 모습에 대견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왜 유독 씻고 닦는 문제로 내가 섭섭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품 안에 끼고 있던 신체적 접촉을 애써 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오는 일이 섭섭했던 것 같다. 솔직히 씻기고 닦아주는 일들은 너무나 귀찮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니 이상하게 내 마음이 뿌듯함과 씁쓸함을 오갔다. 마치 목욕탕 안의 냉온탕을 드나들다 급격한 온도 변화에 체력의 한계를 느껴 멍 때리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비단 이것뿐일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자신의 경계를 지켜가며 나에게 넘어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낼까.

자신의 구역에 나를 초대하지 않는 일도 빈번하겠지.

사춘기의 반항과 감정적인 언어들로 상처를 주는 일들도 일어나겠지.

그런 상황이 온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나는 슬프기보다는 호탕하게 웃어버리겠다고 미리 결심한다.

그게 결심대로 될 일이 만무하겠지만.



나는 아이가 곁에 있는데도 종종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 가득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웃는다.

그 시절은 나에게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하고 사랑이 넘쳐나고 종종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운 날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수많은 육아서를 읽어나가며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맞다. 그때 나는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은 아이를 위한 일이었다기보다는 순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 일은 나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주었고 새로웠고 아이가 매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궁금증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릴 때 나는 아이의 눈 속에서 유영하고 아이의 손가락을 맞잡아 아이와 함께 머물길 바랬다.

육아의 기억이 지우고 싶은 상처가 아닌 오히려 의미를 담아 새기고 싶은 머릿속 타투가 되었다.



아들 때문에 섭섭하다던 동기에게 나도 문자를 보냈다.

아들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언젠가는 우리 품을 떠나보낼 아이들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되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는 것 밖에 없지 않으냐고.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해줘서 타인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로 키우자고 말이다.

해가 더 할수록 섭섭함이야 말할 것도 없이 더 커지겠지만 어쩌겠나. 

그게 부모의 자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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