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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후 Aug 25. 2023

이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함께한 산책

[소로와 함께한 산책] 북리뷰

팬데믹 시절, 온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 그 이름을 알게 된 "소로".

큰맘 먹고 그의 책 [월든]을 구입했지만,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출판사로부터 리뷰 제안을 받고는

욕심을 부려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곳 필리핀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책을 받았다.


너무나도 기다리던 책이었지만

최근 몸과 마음의 쉼이 필요했던 터라

나의 컨디션에 맞게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책을 마주했다.



헨리를 사랑한 젊은 남자 벤 섀턱.

나보다도 무려 열 살 이상 어린 이 남자의 내면의 깊이가 놀라웠다.


단순히 육체의 고통 때문만은 아닌 듯하고,

마치 이 시대의 소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할 만큼의 매력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1부)


집에서 케이프코드까지 한 시간 동안 차를 몰면서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헨리의 그 평화롭고 고상한 관점을 본받는 모습을 상상했다.
'해변은 일종의 중립 지대다'라고 헨리는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이 세상에 대해 숙고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중략)
우리가 먼 길을 떠날 때 늘 품는 희망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고독한 상태에서 풍경이 나를 해방시켜 주기를?
마음이 새로워지고 차분해지기를?

- 본 책, p. 16



헨리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를 시작한 그가 길을 떠나며 품은 생각이었다.

나 또한 먼 길을 떠날 때 이런 희망을 품고는 했었는데....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고독한 상태에서 만나는 풍경이 내게 주는 해방구 같은 것을 기대하곤 했다.



나는 딴생각을 하려고 모래 바닥에 앉아 노트에 바람의 동의어들을 적었다.
구름강, 날씨의 누룩, 계절 교환자, 식민지의 연료.
- 본 책, p. 22



가끔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 나도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연의 대상을 하나 정하고, 그것을 칭할 수 있는 나만의 동의어들을 나열해 보기. 썩 괜찮은 탈출구일 것 같다. 헨리나 저자처럼 멋진 표현을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해가 구름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앉아서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전나무들의 기억을 내 생각과 기꺼이 바꾸고 싶었다. 눈, 얼음, 태양.'

- 본 책, p. 77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이 문장을 꼽겠다. 이토록 충격적 이리만큼 아름다운 표현을 내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헨리는 형이 세상을 떠나고 육 개월 후 와추셋산 정상에 올라 마치 '위안을 위해 주어진' 것처럼 별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도 했던 것일까? 깊은 슬픔의 죽은 껍데기를 걸으면서 벗겨내고 있었을까? 이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비대해진 자아를 몰아내기 위해 밤하늘이라는 그토록 절박한 아름다움의 그늘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것일까?
상실 혹은 혼란을 멀리서 아주 작게 바라보기 위하여?

- 본 책, p. 109



별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필리핀에서 비교적 고지대인 이곳 따가이따이 인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산도시 사가다나 바기오에서처럼 쏟아지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이 지역의 별들은 적어도 마닐라 한복판에서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무튼,, 비대해진 자아를 몰아내는 방법, 나의 상실 또는 혼란을 멀리서 아주 작게 바라보기 위한 목적으로 선택한 필리핀에서의 나의 삶터는 분명 "와추셋산 정상"이다.



헨리가 자신과 자연을 이어주는 혈관을 찾아 길을 나섰다면 나는 꿈을 털어버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털어버리기는커녕 더 많이 얻었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풍경과 더 많은 별을 찾았다. 높은 파도가 내 삶을 보듬는 것 같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빛을 넘치게 내어주는 자연은 얼마나 풍요롭고 너그러운가'라고 나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리고 그 뒤의 별들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죽음처럼 다가와 낮을 한입에 삼키면, 그제야 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별들은 보인다.

- 본 책,  p. 116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길을 나섰던 저자.

하지만 털러 버리기는커녕 더 많이 얻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더 많은 사람, 풍경, 그리고 별...

오직 어둠 속에서만, 별들은 보인다는 그의 고백을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헨리의 일기를 읽으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계절과 기분에 상관없이 집 밖으로 나서면 늘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이다.

- 본 책, p. 127



계절과 기분에 상관없이 집 밖으로 나서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 맛집을 찾기보다는 무조건 두 발로만 걷는 시간을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 그곳이 낯선 곳이면 더욱 좋겠다.



(2부)


도로와 산업을 증오하고 시대에 걸맞지 않게 살고 싶었던 남자였지만 그는 조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그 시대 19세기의 환경적, 정치적, 그리고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잔인한 인종 차별주의와 편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의에 대한 확실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아침 산책에서 만나는 꽃에 대해 시적으로 분석하는 남자였지만 그의 시야는 제한적이었다.

- 본 책 p. 224



헨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의 이상형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정신세계에 매력을 느낀 것은 분명한데, 그의 시야 또한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헨리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럼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종 차별주의에 대해서는 솔직히 약간은 실망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페이지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혹시 내가 오독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말이다.


무의식이 느슨해져 잠들지 못하는 밤이 무서웠던 적이 있다. 지금 나는 밤을 사랑한다. 집에 포근히 안긴 느낌, 하늘이 푸른 껍질을 벗고 태곳적 빛줄기를 보여주는 밤을 사랑한다. 나는 이제 불면의 밤과 내면의 불안을 피하고 싶지 않다. 별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강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리고 습지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늘 거기 있었고 내가 준비가 되면 보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세상은 오직 아름답게만 보였다. 자연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늦은 팔월의 밤 강에서 소용돌이치는 반딧불이는 나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 본 책, p. 286



1부와 2부의 저자가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저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치유와 안정을 찾아서일까?

2부의 글을 읽기가 처음에는 낯설었다. 다행히 2부의 기록 중 '알라가시: 자연은 수천 번 자신의 비밀을 드러냈다'의 내용은 두 번을 연이어 읽을 정도로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내가 보아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아직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자연을 닮고 싶다. 나를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도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반딧불이처럼, 별처럼....




- 감사의 말 -

멋지고 다정한 제니에게,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당신과 함께 바다의 소리를 듣고 해변에 피는 장미 향을 맡고 싶다.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친다.


내겐 책 속에 거론된 인물이나 주인공을 질투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여러 차례, 다양한 장르의 책 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 이번엔 저자의 연인 '제니'에게였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의 힘을 소유한 사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은 까닭이 아닐까?

무리하지만 의미 있을법한 욕심을 부려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나의 내면을 채우고 나눌 수 있는 준비를 차근히 해야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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