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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후 Feb 13. 2022

윈터링, 나만의 겨울나기 연습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를 읽고


누구나 한 번쯤 겨울을 겪는다. 어떤 이들은 겨울을 겪고 또 겪기를 반복한다.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을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프롤로그 중


인생을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가 있다. 우주의 사계절, 지구의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사계가 있고 나 또한 그 자연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내 인생의 윈터링이 언제였는지를 돌이켜보게 하는 책이다.


식물과 동물은 겨울과 싸우지 않는다. 겨울이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여름에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삶을 영위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준비하고 순응한다. 그들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놀라운 탈바꿈을 감행한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중에서


9월의 이야기인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3월 말의 에필로그까지, 저자인 케서린 메이의 겨울나기 경험을 담은 7개월간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메이는 이 시기를 '윈터링'이라 이름 짓고 받아들이고 견디어낸다.

케서린 메이처럼 아주 굵게, 혹은 약하게라도 살아가는 동안 내게도 겨울을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지나갈 것이다. 식물과 동물들처럼 준비하고 탈바꿈하는 지혜를 의식적으로 갖추어야 함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소중한 메시지들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겨울을 지나가는 시기에 만난 이 책과의 인연이 감사했다.


그 어떤 계절보다도 겨울에는 가장 어두운 박자로 똑딱거려 우리에게 봄으로 향하는 멜로디를 부여하는 일종의 메트로놈이 필요하다. 어찌 됐는 한 해는 흘러가겠지만 그 시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박자를 느끼고 변화의 순간들을 인식함으로써, 시간을 들여 한 해 중 다음 국면에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는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중에서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40대에 들어선 이후 생긴 버릇이 있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동지로 정하고, 동지에 즈음하여 지난해를 갈무리해보고 작게나마 새해 계획들을 세워보곤 했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로 동지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고 책을 대하는 마음의 문이 더욱 활짝 열리게 됨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밤이 가장 긴 동지의 시기에 맞춘 종교의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꼭 한번 영국의 스톤헨지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이 책을 통해 관련 정보를 상세히 알 수 있어서 12월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왠지 영국 여행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왕이면 동지 시즌에 맞추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 이렇다 할 극적인 순간은 없었지만,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알리는 일련의 몸짓 속에서, 그 연속성에 주목하면서, 12일간의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조금 변한 것은 있다.
다이어트 계획도 없고, 채식이나 금주 맹세도 없고, 속죄하지도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12월과 1월 사이의 경계가 제멋대로라는 느낌을 덜 받기 시작했다. 빛의 귀환과 봄의 기약에 관해서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휘날릴 것이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이 지날 때> 중에서


이 책 속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이다. 내가 새해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조금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 케서린 메이처럼 나도 에세이 작가가 된 것인 양 각 월별 목차를 나만의 목차로 바꿔 써 보았다.

지난해 10월, 11월 목차를 쓰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구체적인 변화와 행동이 있었던 지난해 10월이 내게는 윈터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덕분에 11월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음을 또한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득했던 지난 12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도전으로 차분하게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중에서 2021년 나의 10대 뉴스를 만들어 보고 공유한 것은 부끄럽지만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꼭꼭 밟고 지나가자고 마음먹었던 1월도 어느새 지나갔다. 매일매일의 하이라이트를 계획하고 기록하며 보낸 1월, 나만의 목차에 어느 정도 다가간 한 달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 하루까지 아주아주 소중하게 보내야지 마음먹었던 1월이었다.


추위에 유난히도 약한 나는, 특별한 한 해의 시작을 장식하고자 지난해 11월부터 마음먹고 한라산 백록담 겨울산행을 준비했다. 그 계획을 멋지게 이룬 1월이기도 했다. 정말로 한겨울의 혹독한 기후에 맞선 겨울산행이었고 한라산 정상에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했다.


어느새 2월이 시작되었고, 실질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도 지나갔다. 옛 말대로 입춘 추위가 대단한 요즘이다. 지나간 1,2월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는 마음을 을 다짐하는 나만의 의식을 꼭 치러보고 싶다. 3월, 경칩의 시기에 맞추어 움츠렸던 몸을 쫙 펴고 도약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겨울나기를 더 잘하려면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시간은 순환적이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에필로그 중



삶의 순환적인 기능을 인정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통 큰 시야와 마음자리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연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당장 오늘부터 주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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