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이름을 바꾸었다. 이십대 중반까지 착실히 쌓아올린 나름의 추억이 없지 않았지만, 큰 미련도 없었다.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새 이름을 받으러 엄마랑 작명소에 간 기억이 난다. 오래된 단층집이었는데, 번쩍번쩍한 점집이라기보다는, 먼 친척 어르신의 집에 다니러 간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책이 꽉 찬 서재에서 그분과 마주 앉았을 때는 기대감에 좀 두근거렸던 것 같다. 내 생년월일을 살펴보면서 그 분은 내게 어떤 이름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작명소에 가기만 하면 알아서 좋은 이름을 주는 줄 알았던 터라 나는 조금 당황했다. 바꾸고 싶었지 무엇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갔으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가다니, 지금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남자 같은 이름이요."
1분 정도 흘렀을까, 생각을 고르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때 내 이름은 좀 여성스러운 편이었는데 이왕이면 새 이름은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서 그런 대답을 하니 그분도
조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첨엔 '필'이나 '철' 같은 글자를 붙이시더니 옆에 앉은 엄마조차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자 마침내 '별 태'자를 써 주셨다. 나는 그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이름을 바꾸려면 법원에 개명 사유를 제출해야 한다. 요즘은 개명도 선택이라는 의식이 생겨서, 절차도 간편하고 승인도 잘 난다는데, 내가 개명을 했던 10년 전에는 개명이 꽤나 복잡해서 법무사를 끼고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법원에 도착해서야 다른 사람들이 개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소명 서류를 준비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평소의 나 같으면 그대로 돌아와서 차근히 서류를 준비했을텐데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내 뜻대로 살기 위한 이름이니까. 나는 판사가 무조건 승인할 만한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다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단명한다고 함." 이것이 내가 적은 개명 사유였다.
너무 강력한 사유를 내서였을까, 남들은 개명 승인이 6개월 넘게 걸린다는데, 나는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승인이 났다. 그리고 10년. 이름이 달라져서 내 운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달라져서였는지 여하튼 나는 새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았다. 선택은 항상 내 몫이었고, 최선을 다해 선택을 증명해왔다. 그 사이 나는 직업을 3번 바꾸었고, 결혼도 했다. 우는 날도 있었지만,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신이 나에게 또 한번 인생을 바꿀 기회를 준다고 해도 거절할 만큼.
인생은 항상 예측할 수 없다. 신과의 거래도 마다했는데, 뜻하지도 않게 세 번째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내가 이직한 회사는 영어 이름을 쓰는 스타트업이다. 국어를 전공한 내가 영어 이름을 짓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여하튼 재미있는 일이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영어 이름만 쓰면 수평적인 조직이냐고 반감이 좀 있었는데, 직급도 님도 없는 조직문화를 겪어보니 이름에는 역시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새 이름은 '태'에서 음을 빌려 T로 시작한다. 근사한 의미도 담았다. 개명이 체질인걸까, 세번째 삶도 꽤나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