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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Dec 16. 2020

보통보다 조금 좋은 것

출처 : 이미지투데이


샴푸나 칫솔을 살 때, 수건이나 반찬용기를 새로 들일 때, 나는 보통보다 조금 좋은 것을 선택한다. 최저가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최저가가 발목이라면 내 선택은 허리에서 배꼽 정도가 아닐까? 최고급은 아니어도,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써야지 싶다.

적당히 좋은 것이 주는 만족감. 이건 순전히 나의 자격지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 정도 소비가 나의 격에 맞다고. 최저가를 찾아서 얻는 이득보다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 내가 벌이가 그리 대단치는 않아도, 한 뼘쯤 둔 그 여유가 나를 위로한다.

10대와 20대, 그러니까 나의 경제적 배경이 내 부모에게 종속되었을 때 나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밥을 굶은 정도는 아니어도, 집을 줄여 이사도 했다든가, 고지서를 처리하지 못해 쩔쩔 맸다든가 하는 일들은 적지 않았다. 애써 남루함을 감추려고 노력 깨나 했을텐데 모두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딱히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서른살에 결혼을 할 때에도 형편은 비슷했다. 대학원을 막 졸업해서 학자금 대출이 2천만원 정도가 있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원을 간 게 아니라, 교사가 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던 길이다. 어쨌거나 수중에 200만원과 남편이 보태준 500만원으로 결혼준비를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 때 강사로 일하면서 수입이 나쁘지 않을 때여서 카드로 쓰고 벌어서 갚으며 살았다. 부자 남편을 만나 팔자를 고친 건 아니지만, 결혼 덕분에 30년된 오래된 아파트라도 집이 생겨 마음이 좋았달까?

그리고 7년. 그 사이 내 직업은 선생과 기획자를 거쳐 마케터로 바뀌었다. 업계에서 이름을 알 법한 회사에 직함이 생겼고, 서울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도 했다. 연봉계약서에 새로 싸인을 하고 온 날, 남편과 와인을 나눠마시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중산층이 아니겠냐고. 더이상 바닥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돈이라는 틀 안에 가둔다. 보통보다 좋은 것을 살 수 있으니, 내 인생도 보통보다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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