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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엠은주 Mar 13. 2023

행복은 맛있다

코앞에 닥친 시련이 어느 순간에 나를 덮칠지, 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나는 십 대에는 대학 입시 때문에 불안했다. 이십 대에는 내가 살아가야 할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빨리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안정적으로 살 줄 알았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결혼을 도피처로 삼았던 게 잘못이었다. 육아도 힘들었지만, 남편과 좋지 않은 관계가 나를 더 지치게 했다. 삼십 대엔 별거, 사십 대엔 사춘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 자영업을 시작한 것도 사십 대였다. 오십 대가 되어도 불안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독서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여 책을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인생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모두 그대로였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어도 변하지 않는 나를 보며 죄책감과 함께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변화된 삶을 꿈꾸며 꾸준히 책을 읽었다. 독서가 내 마지막 보루였다. 살기 위한 생존법으로 독서를 택했다. 처음에는 책만 읽으면 무조건 삶이 변하는 줄 알았기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세계가 열린 건 맞지만 독서 후에 남는 게 없었다. 책 내용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독서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차츰 자기계발에 눈이 뜨였다.


책꽂이에서 칠 년 전에 샀던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을 발견했다. 그 책을 살 때는 많은 사람이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아니 자기계발이란 것 자체를 몰랐다. 그런데도 집에 책이 있는 것을 보니 당시에 베스트셀러였나 보다. 『회복탄력성』은 제목부터 말랑말랑하지 않은데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이라는 부제 때문에 샀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책이니 당연히 좋은 내용이고 나를 위로해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수필처럼 감성적으로 위로하는 책이 아니었다. 프롤로그도 다 읽지 않고 덮어두었던 책이다. 이랬던 책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청개구리가 다리를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장애물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 표지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련 극복에 관한 내용일 거라는 나의 예상이 맞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회복탄력성은 역경을 극복하는 힘이다. 이 책 2장에 각자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KRQ-53 테스트’지가 있다. 자기조절능력, 대인관계능력, 긍정성 이 세 가지 점수의 총합이 각자의 회복탄력성 지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점수는 195점이다. 170 이하는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이고 220점이 넘으면 회복탄력성이 아주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떨리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체크한 뒤 점수를 계산해 보았다. 나의 회복탄력성 지수는 196점으로 간신히 평균을 넘었다.


그동안 견디기 힘든 일을 많이 겪은 것에 비해 높은 점수라고 생각했다. 이 테스트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복탄력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긍정성의 점수가 다른 요소보다 현저히 낮았다. 긍정성은 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감사하기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그중에서 생활만족도 점수가 형편없었다. 25점 만점에 9점이었다. 생활만족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요소에서 평균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생활만족도는 행복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만족도’를 말한다. 당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행복하지 않으니 생활만족도 점수가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내 운명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였기에 현실에 대해 만족감이 없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는 게 참 빡빡하고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알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병을 치료할 때에도 정확한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의료기술과 장비가 있더라도 오진하게 되면 치료가 어려워진다. 삶을 바꾸고 싶어도 그렇게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니? 무엇을 하고 싶니? 어디에 가고 싶니?”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답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에 있었던 일이다. 부산에는 친척이 많이 살고 있었다. 삼촌과 이모 두 분, 외삼촌, 외가 쪽 사촌 언니와 오빠가 있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에는 큰이모 집을 방학 때마다 놀러 갔었기에 이종사촌 언니, 오빠와 친하게 지냈다. 신년 휴가를 받아서 삼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나를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모 집에 데려다줄 계획이었는데 이종사촌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삼촌과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부산의 번화가로 나갔다. 

“은주야, 뭐 먹고 싶노?”

“몰라요”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삼촌이 정한 메뉴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삼촌은 또 물었다. 


“은주야, 뭐 하고 싶노?”

“몰라요”

“영화 보러 갈까?”

“네”

“뭐 볼래?”

“몰라요”

삼촌이 정색하며 말했다.

“은주야, 다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야지.”

삼촌의 말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했고 나보다 남의 생각이 더 중요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튀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님의 교육 때문이었다. 삼촌의 말을 듣고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내 의견을 말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되었다. 


『회복탄력성』을 읽고 내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나에게 집중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니 깊은 상처들이 보였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먼저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복탄력성 테스트를 통해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실제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조그만 자극에도 울컥하며 고통이 들고 일어났다. 잠재의식 저 밑바닥에 묻어 두었던 상처가 아우성쳤다. 비로소 내가 힘들었던 원인을 찾은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나간 날을 되돌릴 수 없으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도움받았던 것이 임재성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었다. 제목부터가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출간된 지 오래되어서 새 책은 살 수 없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몇 번의 구매취소를 겪으며 어렵게 구매했다. 책 내용이 구구절절 공감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다.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하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귀접기를 하며 읽었다. 서툴지만 독서 노트도 썼다. 마리사 피어의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라는 부제가 붙은 루이스 L. 헤이의 『치유』를 읽으면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세 권을 읽고 지난날의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으며 잘못된 것을 고치고 새로 익힌 것을 연습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무겁게 짓누르던 상처가 점점 가벼워졌다. 자존감이 회복되며, 어려웠던 시간을 잘 지나온 내가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아팠던 마음이 회복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동안 ‘척’하며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안 아픈 척, 안 슬픈 척, 안 외로운 척, 안 힘든 척 이렇게 척을 하며 살았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안개 속에서 답을 찾아 계속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결론은 이랬다. ‘척’하며 살다 보니 정말 내가 괜찮은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척’이 아니라 그게 진짜 내 모습인 줄 알았다. 내가 나를 속인 셈이다. 


그럼 나는 왜 나를 속였을까? 한참을 이 질문에 매여 있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 슬프다는 것, 외롭다는 것, 힘들다는 것을 남에게 들키기 싫었다. 힘든 내 모습을 보면 무시할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행복하길 바랐다. 타인이나 나를 속이려고 의도적으로 ‘척’하며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인정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다. 감정을 숨겼던 것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힘든 감정을 꼭꼭 숨기고 모른척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외면할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왜 힘겨운 삶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 했을까? 불행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남보다 좀 더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힘들어도 그 속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책을 읽은 후,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의 감정과 기분, 욕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토닥여 주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노력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나, 참 행복하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마음속 깊이 행복을 느끼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세상이 빛나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미 아름다운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착용한 선글라스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였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삶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나의 상황은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있고 행복하다. 이제야 행복이 어떤 것인지 맛보게 되었다. 행복은 참 좋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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