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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 Nov 04. 2024

사랑의 이면

행복하기 위해 불행도 하다

8년 전, 나의 급성 정신병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었다.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사람이다. 외로움에 사랑을 하고 싶던 차, 그 앱은 연애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외모와 나이, 사는 지역 등 이성에 관련된 주요 정보를 빠르게 제공했고 더군다나 무한한 선택지를 줬다. 표면적인 정보만 보고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는 표시를, 그리고 상호 간에 표시를 하면 대화가 가능해지는 뭐 그런 서비스.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가 이어지게 되면 설레면서도 의심스럽고, 좋은데 좋지만도 않았다. 외롭지 않고 싶어서 했는데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긍정적 감정보단 부정적 감정에 가까운 경험이었달까. 데이팅 앱에 익숙해지던 어느날 드디어 어떤 사람과 현실에서 마주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 만남이 나에게 어떤 지옥을 보여줄지도 모르고.


한낮에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하지만 대화는 썩 좋지 않았다. 별로 나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딱히 할 얘기도 없는지 영화를 보자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술을 마시러 갔다. 하루종일 불편한 감정이 한가득 쌓여있던 나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과하게 했다. 그렇게 기억을 잃고 깨어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내게 일어났다. 처음 보는 집에서 자고 있던 나와 그.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이건 아닌데...' 외로움에 타락하고 있는 나 자신이 황당했다. 또 어이가 없는 건 그의 태도. 아침이 밝아 헤어지며 한두 번 일이 아니라는 듯, 별일이 있었냐는 듯 인사하고 가버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하룻밤 즐기고 끝나는 그런 사이? 그런 의도로 만난 사람과 그게 아니었던 사람과의 간극은 컸다. 나는 순진했고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아 정신병까지 얻었다.


어떤 기억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각인된다. 그날의 상처를 지우지 못해 오랫동안 괴로워했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시작해도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오히려 뚜렷해지기도 했으니. 아니, 그 일은 성격과 행동도 바꿨다. '쉽게 사람을 믿지 말자. 사랑에 빠지지 말자...' 사랑과 인간관계는 늘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우울과 외로움은 물을 머금고 쑥쑥 자라나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 괴롭고 행복하지 않았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발목 잡혀 병만 키우는 느낌이랄까.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고 싶은 생각을 멈추기 위해 트라우마와 그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방법을 몰랐는데 오늘은 악몽 같은 기억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진실한 사랑으로 이제 나는 그가 아무렇지 않아 졌다. 어느덧 내게서 그는 아무개가 되었다.


바라만 봐도 좋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다. 의심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메마른 현실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남편. 남편과 연애 때는 가끔 두려울 정도로 행복하다가도 앞서 언급한 트라우마 이상의 아픔과 슬픔마저도 느꼈다. 온탕과 냉탕, 천국과 지옥 같은 연애와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나 끝내 놓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그런 연애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지쳤을 법도 한데 결국은 내 곁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칼로 물 베기일까? 다툼이 오히려 관계의 굳히기를 만든다. 이제 남편 앞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도, 쉽게 사람을 믿는 순진한 나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고 내가 많이 사랑하니까. 이 관계 덕분에 과거 트라우마와 상처가 흐릿해졌다.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트라우마가 사라졌다.


사랑의 이면을 무수히 봤다. 행복하려면 불행은 필수적이었다. 차갑고도 따뜻한 사랑, 쉽게 해내기 어려운 두터운 사랑을 가지기 위해서 나는 꽤 불행했다. 교통사고 같은 깊은 상처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게 행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제는 사랑의 이면이 있다는 걸 알기에 불행해도 잠시라고 생각한다. 행복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랑이 오래도록 머물러주기를 바라며.



- FINE -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와 사랑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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