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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Dec 26. 2020

직장 내 괴롭힘 없는 2021년을 소망하며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이 괴로운 이유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취업규칙 작성이 의무다.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관할 고용노동청(이하 '노동청')에 신고하면 된다. 그런데 가끔 노동청에서 취업규칙을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법적 필수 요소들을 누락하면 이를 추가하라는 이유에서 반려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나 법적으로 필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동청이 취업규칙을 반려하는 경우도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은 법정 의무교육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내용이 빠져 있으면 노동청은 반려 처분을 내린다.


그만큼 노동청이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아니다.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몇 줄 추가하고, 매년 한 번씩 직장 내 괴롭힘 하면 안 된다는 피상적인 강의를 실시하게끔 하는 것이 노동청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유이(唯二)한 일이기 때문이다(나머지 하나는 근로감독인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다고 모두 근로감독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실상 취업규칙 반려는 노동청의 유일한 액션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는 누구에게 할까? 사업주에게 하게 되어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조사는 누가 할까? 사업주가 하거나, 사업주가 지명한 사람이 한다.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면 어떻게 될까? 사업주를 조사하여 직장 내 괴롭힘 가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사업주가 가해자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노동청은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를 조사하지 않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 사업주가 신고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때에만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20대가 예민해서가 아니다. 세대가 높아질수록 반비례하는 피해 경험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권력 문제임을 암시한다. 사진출처 한국일보.


그러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신고를 함에 따라 얻는 이익은 없고, 도리어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되는' 사건을 초래한 별난 놈으로 찍히기만 한다. 특히 부당해고 성립을 피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저성과자를 내보내려는 기업 앞에서, 피해 근로자는 막막하기만 하다.




며칠 전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도 그러한 경우였다. 임원이 다른 근로자를 시켜 감시하게 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직책을 강등시켰으며, 업무 능력을 제고한다는 이유로 직무와 관련 없는 강의를 듣게 하고 시험을 보게 하는 동시에 매일 꼬투리를 잡아 의뢰인을 질책했다. 의뢰인이 스스로 나가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의뢰인은 임원의 이러한 행태에 결국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냐는 의뢰인의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해 주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물어보는 의뢰인에게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근로자에게는 불리한 처우가 금지되지만, 해고나 징계 등을 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해당 임원은 의뢰인에게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할 수 있다. 


사업주가 가해자와 근로자를 분리하지 않아도 그 어떤 처벌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처럼 임원이 가해자인 경우 가해자와 분리할 방법도 사실 뾰족하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은 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는 불법행위이므로 이를 토대로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지만 근로자들에게 법원의 문은 높기만 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은 자에게는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주어지지만 사업주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그와 무관한 다른 근로자와 회사가 매달 월급에서 지출하는 고용보험으로 배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잘못한 놈 따로 있고 돈 주는 놈 따로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는 노동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이전 글 '직장 내 괴롭힘의 미래' 참고).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입법안이 여야 가리지 않고 발의되었는데, 사용자 등이 가해자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송옥주/더불어민주당), 사용자가 조사 등을 해태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용자가 가해자인 경우는 형사처벌하는 안(박대수/국민의 힘), 도급인 등의 제3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임이자/국민의 힘, 강은미/정의당)이 그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사진출처 이투데이.


상기 발의안 중 어느 하나라도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사견을 덧붙이자면 결국 직장 내 괴롭힘 구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가 개입하는 안이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용자를 형사 처벌한다 해도 실무적으로는 집행유예나 벌금형 이상의 처벌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기에 위하력이 없을 것이고, 과태료 처분의 경우도 피해 근로자가 사용자에게서 배상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9일 국회 본회의가 종료되었다. 공수처법과 국정원법 등 굵직굵직한 법안들이 통과된 반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직장 내 괴롭힘 등 민생 관련 입법들은 상당수 처리되지 못했다. 부디 2021년은 직장 내 괴롭힘 없는 행복하고 안전한 일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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