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Dec 31. 2020

버드박스: 눈 감은채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버드 박스(수잔느 비에르, 2018)


운명을 보는 것과 운명을 아는 것은 다르다. 인생은 내 운명을 보기 위해 마구 날뛰는 소 위에 올라탄 로데로 경기의 카우보이가, 운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되는 것임을 수긍하는 과정이다.


- 아래 글은 영화 '버드박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남편과 이혼하고 우울증을 앓던 멜로리(산드라 블록 분)는 뱃속의 아이로 인해 병원을 찾게 된다. 동생과 함께 찾은 산부인과에서 멜로리는 '그것'을 보고 자살하게 되는 전 지구적 현상을 최초로 목도하게 된다.


동생 역시 '그것'에 홀려 죽게 되고, 멜로리는 '리디아'의 손에 이끌려 피난처로 들어가게 된다. 피난처에서 생존자들은 자신의 눈을 가리고 '그것'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구성원 중 일부가 음식과 차를 갖고 도주하기도 하고, 남은 구성원들 간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싸이코'들이 생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그 서스펜스를 더해간다.


영화 '버드박스' 스틸컷


'싸이코'중 하나였던 게리(톰 홀랜더 분)에 의해 피난처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고, 멜로리는 자신의 아들인 '보이', 그리고 죽은 피난처의 동료 '올림피아'의 딸 '걸'을 동반한 채 새로운 피난처를 향해 떠난다.


새로운 피난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고 강을 내려가야만 한다. 피난처로 오는 길을 알려주는 무전기 너머 목소리는 아이 두 명이 동반한다는 이야기에 난색을 표한다. 강을 내려가는 도중에는 강한 급류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급류를 타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급류에서는 눈을 떠야 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말에 멜로리는 망설인다. 눈을 뜨면 죽는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고 급류를 타는 것은 집단자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만큼이나 두려운 '싸이코'들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남겨진 선택지는 오직 급류를 타는 일 밖에는 없다.




급류에 도달하기 직전 멜로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 중 한 명이 눈을 떠야 한다' 그러나 누가 눈을 뜰지 정하겠다던 멜로리는 도저히 말을 잇지 못한다. 결국 멜로리는 모두가 눈을 감고 급류를 돌파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급류를 타기 전 멜로리가 도리어 아이들의 눈을 더욱 질끈 감게 하고 보트는 자신을 집어삼킬 물살 새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우리 인생도 눈 감고 급류 타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트는 박살 나지만, 그들은 결국 새로운 피난처에 당도하게 된다.


좌 영화 '컨택트' 스틸컷, 우 영화 '버드박스' 스틸컷


영화의 각본을 '컨택트' 각본을 담당했던 에릭 하이저러가 맡았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 주는데, '컨택트' 역시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에이미 아담스 분)'가 자신에게 닥칠 시련을 알면서도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컨택트, amor fati>.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좋지 않은 기억만 가득했던 2020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마트 하나, 분식집 하나, 카페 하나가 폐업을 했다. 불확실한 것들만 늘어나고 확실해지는 것은 두려움뿐인 연말연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죽어가는 나와 나의 운명을 사랑하여 끝끝내 정면 돌파해내는 2021년이 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칠드런 액트: 그럼에도 기회를 준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