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Apr 24. 2020

컨택트, amor fati

<컨택트>, 2016


Es la misión del verdadero caballero. Su deber. ¡No! Su deber no. Su privilegio. Soñar lo imposible soñar. Vencer al invicto rival, Sufrir el dolor insufrible, Morir por un noble ideal. Saber enmendar el error, Amar con pureza y bondad. Querer, en un sueño imposible, Con fe, una estrella alcanzar.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中


루이스는 외계인과의 대화를 위해 미국 정부가 초빙한 언어학자다. 외계인과의 첫 만남에서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 체계에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언어에는 우리말과 달리 앞뒤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부터 읽어도, 뒤에서부터 읽어도 그 의미가 같은 외계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루이스는 외계인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외계 언어를 배우는 동안 루이스에게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녀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들이 잔상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잔상들은 지나온 일들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예견이었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지만 결국 그 아이가 죽게 되는 비극. 루이스가 끊임없이 보아 왔던 잔상이 차라리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 그녀는 지나간 상처의 고통이 아닌, 오지 않은 일(未來)을 위한 "선택"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내게 닥칠 비극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가.


김연자의 노래 제목으로도 유명한 'amor fati', 자기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니체의 amor fati는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운명 역시 겹겹이 쌓아 올려진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운명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순간순간의 선택에 어찌 내가 충실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니체의 허무주의는 수동적인 허무주의가 아니라 능동적 허무주의인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풍차에 단기필마로 돌진하는 돈키호테도,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알면서도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또 한 번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루이스도, 지구에 온다면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찾아온 외계인 '애봇'도, 모두 자신의 운명을 끌어안아 스스로를 세상에 내던진다.


가능해 보이는 일들만 목적지로 삼고, 가능해 보이는 목적을 위해 가능한 노력의 범위 안에서 가능한 그 흐름에 생을 맡겨 내 운명을 기탁할 순간의 선택조차 애당초 불가능한 보편적인 인간들이 미처 종착지로 삼지 못한 그 어떤 장소를 향해 닻을 내릴 만한 용기.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백마 타고 갈 초인이 되어라고 말하는 영화, 잠 못 드는 밤 우연히 재생한 영화는 러닝타임이 끝나고도 내 눈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