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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r 07. 2022

킹메이커: 선거와 고백은 닮아 있다.

킹메이커 (변성현, 2022)

 고백은 도전이 아니라 확인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뜻일까? 전자는 고백 성사가 고백하는 사람에 달려있다 보는 것이고, 후자는 상대방에게 칼자루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도전자는 상대방의 마음 이전에 고백의 방법과 기술에 집착한다. 무슨 멘트를 어떻게 칠지 고민한다. 반면 확인자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상대방도 내게 호감이 있는지)  호감의 실체를 추인받는 것에 주목한다.


 도전자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고백과 확인자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고백은 그래서 그 크기가 다르다. 확인자에게 고백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물을 준 뒤 꽃이 맺어지는지 덤덤히 지켜보는 과정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선거도 본디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도전이기 전에, 유권자의 마음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선거전략을 잘 세워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 언정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킹메이커 (변성현, 2022)


 ‘킹메이커’는 실존했던 선거 전략가 엄창록(극중 서창대)의 이야기다. 상대방 후보의 이름으로 고무신을 뿌렸다가 다시 상대방 이름으로 이를 뺏아오는 ‘줬다 뺏기’ 전략부터, 영호남을 갈라 만든 혐오 정서로 박정희를 당선시킨 무서운 전략까지. 가히 선거판의 제갈량이라 불릴 만한 기재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영화는 서창대의 선거 ‘기술’을 내심 달가워하지 않았던 김운범이 세 번의 낙선 끝에 결국 서창대 없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종반부 서창대와 김운범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정치도 선거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김운범의 말에 서창대는 기가 찬 듯 웃으며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국민이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걔넨 그냥 구슬리면 믿고 말하면 듣고 시키면 하는 존재입니다.’


 국민이 선거의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정책과 공약을 만드는 것이 캠프의 지상과제가 된다. 그러나 국민을 신민(臣民)으로 본다면 얕은 선거전략에 휘청휘청하는 갈대로 생각할 뿐이다. 그런 캠프에는 공약도 어젠다도 실종된 상태로 갖은 선거기술과 이른바 ‘정치공학적’ 접근만 횡행한다. 그들에게 선거란 겸허히 유권자의 의중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상대 후보에게 투표할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돌려세우는 ‘도전’의 장이다.


킹메이커 (변성현, 2022)


 영화를 보고 다시 현실 정치를 보자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영호남을 갈랐던 서창대의 전략은 그대로 미메시스(mimesis)되어 남녀를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하기 어려우니 이런 전략이 먹히기 안성맞춤이다. 경제난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경제난과 일자리 문제를 활용해 외려 혐오 정서로 빚어낸다. 혐오 정서라는 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라갈 것이 하나 더 있다. 토론회마다 나를 비난하고 내 말 한마디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어느 후보를 내 집안 식구로 맞아들인다면 금상첨화.


 혐오 정서로 선거를 이긴다 한들 진정한 승리라 말할 수 있을까? 정치인은 이겨도 국민은 진 선거다. 다행히 성경말씀과 동시에 뇌리를 스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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