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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r 15. 2022

레볼루셔너리 로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샘 멘데스, 2008)

행복이 먼저일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먼저일까. 미역과 해초를 구분하는 우리말과 달리 영어는 미역도 해초도 모두 "seaweed"다. 미국에서는 미역을 살 수 없다. 미국에는 실상 미역이 있지만 없는 샘이다.


마찬가지다. 행복이라는 단어 없이 행복이 먼저 존재할 수 없다. 시대마다, 공동체마다 행복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행복보다, 행복을 규정하는 방식이 먼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미국. 당시 미국은 근로소득으로 자본소득을 앞지를 수 있는 나라였다. '아메리칸 드림' 신화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은 가능한 것만 선망한다. 노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데 부자를 선망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부부가 행복해보이는 몇 안되는 순간들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그런 의미에서 휠러 부부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밝혀주는 등대였다. 공동체가 규정한 행복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 가장 근접한 사람들! 휠러 부부가 우리 동네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 동네의 수준은 올라간다. 휠러 부부에게 집을 중개해준 헬렌(케시 베이츠 분)이 스스로 뿌듯해하는 이유다.


밀리(캐서린 한 분)가 친구 부부의 파리행을 듣고 남편 앞에서 펑펑 운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우리가 생각한 행복한 삶의 모범이 '진정한 행복'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니, 그렇담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우리는 얼마나 불행하단 말이야?


휠러 부부가 떠나고 밀리는 종잡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물론 겉으로 행복해 보이던 휠러 부부의 삶 역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에 불과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 아니라, 타인이 규정한 행복을 좇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 휠러 부인(케이트 윈슬렛 분)이 무대 속 인물로 그려지는 장면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사는 소시민의 모습을 은유한다.


그럼에도 사회가 규정한 행복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이 있다. 미치광이 수학자(마이클 섀넌 분)로 등장한 헬렌의 아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기충격 치료만 47번을 받은 중증 환자로 묘사되는데, 극 중 유일하게 휠러 부부의 파리행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다만 휠러 부부는 미치광이로 살지언정 사회가 규정한 행복의 공식을 거부한 수학자처럼 용감한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그랬다. 반면 그의 부인 에이프릴은 본인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극단적 선택까지 감행한다.


두 배우 모두 연기가 엄청나다. 진짜 부부를 데려와 찍은 듯한.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감독 샘 멘데스는 이전작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미국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 가족' 프레임을 블랙 코미디 형태로 비판한 바 있다. 샘 멘데스는 윌리엄 예이츠의 소설이 원작인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스크린으로 옮기기 전 고민에 휩싸였다. 아메리칸 뷰티로 이미 유사한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면 해석이 조금 깊어진다.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는 부부의 이야기인 동시에, 타인이 규정한 행복 속에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부부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 행복의 이상향 '휠러 부부'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영원히 빛나길 바랬던 어느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종반부, 부인 헬렌이 휠러 부부의 뒷담을 하자 남편(리처드 이스튼 ) 보청기를 꺼버린다. 그저 뒷담이 듣기 싫었던 어느 할아버지를 보여주려 낭비한 쇼트일까? 한때 우리 공동체의 이상적 가정으로 여겨졌던 휠러 부부 신화가 깨지는 것이 못마땅했던 어느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려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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