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리처드 이어, 2017)
*이 글은 영화 ‘칠드런 액트’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오나(엠마 톰슨 분)는 판사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여러 사건을 심리하고 선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입부에서는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허가할지 여부에 대한 재판이 짤막하게 나온다. 다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아담 헨리(핀 화이트헤드)’와 관련된 건이다.
아담은 백혈병 환자로,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즉각적인 수혈이 필수 불가결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가 믿는 종교의 계율은 수혈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에 병원은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수혈을 허가받고자 소송을 제기한다.
병원 측 변호사와 환자(엄밀히 말하면 환자 부모 측에 가깝다)측 변호사의 법정 공방 장면. 환자가 아직 미성년자여서 본인에게 수혈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병원 측과, 성년이 되기 고작 몇 달 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치료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환자 측.
판사는 직접 환자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영화 종반부에서 드러나지만 미성년자의 수혈 거부권을 인정한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 체계가 아닌 영미법 체계에서는 판례가 법조문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사실 피오나는 굳이 환자를 찾아갈 이유도 없었다. 판례대로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피오나가 법원을 나서는 장면에서 기자들이 그녀더러 유별나다고 하는 장면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환자를 직접 만나본 후에 판결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딱딱한 판결문으로는 설명해줄 수 없는, ‘앞으로 다가올 삶과 사랑’에 대한 이해를 시켜주기 위해, 판사(Judge)는 인간(Adam)을 찾아간 것 아닐까.
피오나는 아담과 노래하며 그가 수혈 받음으로써 마주치게 될 삶과 사랑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돌아와 유사 사건의 여느 판례와 마찬가지로 병원의 수혈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린다. 아담이 수혈받을 때 부모가 지어 보이는 알듯 말듯한 표정이 연출의 백미다.
그렇게 병원을 퇴원하게 된 아담으로부터, 판사(Judge)는 무수한 기도(음성메시지)를 받게 된다. 판사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고 무시하지만, 어느 날 자신을 따라오는 인간(Adam)을 발견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 짐짓 경고한다.
사랑과 동경 사이에서 헷갈리던 소년은 이내 그 고민을 멈춘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소년은 뉴캐슬까지 판사를 쫓아가 같이 살자고도 애원하지만, 판사는 그를 좋게 돌려보낸다. 돌아간 소년은 다시 혈액암이 재발하게 되는데, 방 안에 있던 성경도 그 신앙과 함께 내다 버렸던 소년은 수혈을 거부하는 선택을 한다.
성탄절 공연 직전 아담의 목숨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피오나. 공연이 끝나자마자 호스피스 병원에 달려간 피오나에게 아담은 말한다. 이것(수혈 거부)은 나의 선택이라고. 다가올 삶과 사랑에 대해 말하던 피오나는 할 말을 잃는다.
결국 아담은 죽는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었다면, 같은 병, 같은 방법으로 죽게 되었다면, 판사(Judge)가 인간 아담에게 선사한 결과론적 시한부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까. 피오나는 차라리 처음부터 수혈 거부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표면적으로 아동법의 실익에 대해 말하고 있으나 실상 다루고 있는 것은 자유의지의 존재 이유에 가깝다. 절대자가 인간을 사랑하여 선물로 준 것은 선악과(adam’s apple)가 아니라 한낱 자유의지다.
실상 훗날 환자가 자신을 파괴하는 결정을 할지라도 부모의 수혈거부를 허락지 않은 판사(Judge)의 결정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인생도 결정도 유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한다 할지라도, ‘일단 기회를 준다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아담의 장례식 이후 잿빛 하늘 아래를 피오나 부부가 걸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감독에게 인생은 개인의 자유로워 보이는 선택의 중첩이고,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억지로 이해해보려 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 같다. 그래서 판사는 아이에게 일단 기회를 주었고, 아이는 어른이 되어 홀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