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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30. 2020

매그놀리아: 애들이 뭘 안다고? (매그놀리아 해석)

매그놀리아(폴 토마스 앤더슨, 1999)

웬만해서는 영화를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편이다. 여러 차례 본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제 본 영화가 이해되지 않아 오늘 다시 본 일은 처음이다.


매그놀리아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지미 게이터(필립 베이커 홀 분)'가 진행하는 퀴즈쇼 이름은 'what do kids know', 우리말로 하면 '애들이 뭘 안다고?' 정도로 번역 가능하다.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아이들이 '아는' 것은 단순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들은 폭력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폭력은 그 사람 어딘가에 흔적이 되어 남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폭력의 가해자였던 어른을, '과거'는 피해자였던 '아이', 혹은 폭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

위 문장을 비틀면 아래와 같이 된다.

'어른은 폭력을 잊었지만 아이는 폭력을 잊지 않았다.'


지미 게이터는 본인의 성추행을 추궁하는 부인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답한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기에. 하지만 딸 클라우디아는 아버지의 추행을 잊지 않고 있다. 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장면, 벽에 걸린 그림의 'but it did happen(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이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그런 의미에서 '클라우디아'라는 작명은 과연 탁월하다. 그 이름 자체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 왕년의 퀴즈왕 '도니 스미스(윌리엄 머시 분)'가 바텐더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변기를 부여잡는 씬에서 PTA는 도니 스미스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대놓고 힌트를 준다.


"그건 햄릿이 클라우디우스에게 한 대사였지"


클라우디우스는 햄릿의 삼촌으로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햄릿의 풀네임은 '클라우디아 햄릿(Claudia Hamlet)'이다. 삼촌, 즉 가족에 의해 상처를 입고 반항아가 된 햄릿. 마찬가지로 가족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클라우디아. PTA는 그 둘의 이름을 합쳐 자식의 제유(提喩)로 삼았다.


폭력의 객체였던 아이들은 그 상처를 어쩌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뭔가 삐그덕 거린다. 앞서 말한 변기 씬에서 도니 스미스는 별안간 출애굽기 20장 5절을 언급하는데, 아버지의 죄가 그 아들에게까지 미친다는 내용이다. 아버지의 죄(폭력)가 자식들에게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는다는 의미다.


클라우디아는 남자들이 금방 자신을 싫증 낼까 봐 전전긍긍한다. 프랭크 매키(톰 크루즈 분)는 여자를 길들이는 것만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이라 믿는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는 그들. 아버지의 죄가 자식에게까지 내려온 그들을 위해 PTA는 나름의 처방전을 내놓는다.


사진출처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퀴즈쇼에서 스탠리(제레미 블랙맨 분)는 지미 게이터가 읊어주는 노래 한 소절을 듣고 나머지 부분을 마저 부른다.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인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은 반항적인 새, 그 누구도 길들일(tame) 수 없어요"


이 장면은 경찰 짐 커링(존 라일리 분)과 클라우디아가 커피를 나누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것은 프랭크 매키의 '길들이는' 사랑과 거리가 멀다.


짐 커링과 클라우디아가 그러하듯 서로의 모든 것을 드러내어 그 상처를 나누는 것 자체로 상대방에게 치유가 되는 사랑. 그것이 상처 받았던 모두가 그 고통에서 탈출(exodus;출애굽기)할 수 있는 방식이다. PTA의 처방전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개구리 비는 무어란 말인가?


출애굽기 '8'장 '2'절의 개구리비는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마지막 개구리 비는 별안간 등장한 것이 아니다. 감독은 우리에게 몇 번에 거쳐 개구리 비를 떨어트리리라 복선을 던져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문부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왜 하필 개구리 비?'


출애굽기는 기본적으로 아비(람세스)의 죄가 자식에게 미치는 내용이다. 파라오 람세스가 신을 부정하자 그 자식이 목숨을 잃는 이야기다. 감독이 개구리 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출애굽기를 계속 상기시키는 것은 우리가 짓는 죄가 결코 우리의 대에서 그 심판을 마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니 상처 받은 영혼이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라는 PTA의 처방전과 무관하게, 우리 어른들은 상처 받은 또 다른 어른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천사와 아이를 구분'짓지 말고 모든 아이들을 천사로 여겨야 함이다.


"아이들을 천사와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아!" 영화 '매그놀리아' 스틸컷


#매그놀리아 #PTA #영화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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