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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ug 27. 2020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말의 “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홍상수, 2015) 해석

홍상수는 몇몇 영화 제목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다른나라에서(2012)'처럼 이 영화 역시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이동진도 나름의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나는 그보다 더 단순하게, 그저 ‘말’에 대한 영화기에 띄어쓰기가 안된 것뿐이라 생각한다. 띄어쓰기란 문자 언어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출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말의 힘? 참 웃기고들 있네.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맨날 그렇게 그런 말들을 찾느라고 난린지 모르겠어요. 저는요, 그런 중요한 말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두 모습의 춘수(정재영 분)를 보여준다. 1부의 인물들은 말의 힘을 믿지 않는다. 말의 기능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는 듯하다.


말에는 여러 기능이 있다. 그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말이 있고, 자신을 숨기고자 하는 말이 있으며, 폭로하는 말하기도 있는가 하면, 자신을 드러내거나 누군가를 변호하는 말하기도 있다. 거짓말이지만 위로가 되는 말하기도 있다.


앞의 세 가지는 말의 부정적 기능이며, 뒤의 세 가지는 말의 긍정적 기능이다. 영화에서는 이 여섯 가지 말의 기능이 모두 나타난다.


희정의 말에게 무조건 동조하는 1부의 춘수. 사진 출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1부에서 춘수와 희정(김민희 분)이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 춘수는 희정의 호감을 사기 위해 동조하는 말하기만 한다. 희정이 무슨 말을 해도 무조건 ‘알 것 같아요, 이해가 되네요, 그럴 것 같아요’ 등의 말을 꺼낸다. 춘수는 희정의 말을 사실상 반복하기만 할 뿐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말하기는 1부의 술자리 장면과 파티 장면에까지 이어진다.


1부의 술자리에서 춘수는 그저 술만 마시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춘수에게 희정은 대놓고 말한다. “술만 마시지 말고  좀 해요” 파티 장면에서도 자신에 대한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영(최화정 분)에게 “저는 할  없습니다”라며 본인을 숨길뿐이다.


여성편력이 있고, 이미 결혼까지 했다는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지 않는 춘수를 희정은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 책상 앞에 엎드린 희정은 춘수더러 떠날 것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춘수는 그렇게 파티를 떠난다.


내 행동을 이해받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하지만 1부의 춘수는 말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할지언정 무의미한 말의 성찬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복내당’의 한자는 쉽지만 그 해석은 어렵다. 그게 말하기다. 그걸 뜯어보면 말하기의 힘이 나온다. 사진출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이것이 ‘그때’의 춘수다. 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다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떠들면 떠드는 대로 둔다. 굳이 스스로 변명하려 해도 그 말에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수는 별거 없어 보이는 타인의 말들에 영혼 없는 맞장구만 칠 뿐 본인을 드러내어 자기 정체성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들지 않는다.




2부의 춘수는 1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말을 참 함부로 하시네요. 감독님.
감독님은 솔직해서 참 좋으시겠어요.


드디어 춘수는 자기 말하기에 나선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니 욕을 먹기도 한다. 카페에서 희정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그러했고, 희정의 작업실에서 그림에 대해 가감 없이 평하고 난 뒤 그랬다.


사진출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솔직하게 자기 말하기를 한 춘수에게 희정은 홍상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의 방식으로 화를 낸다(‘우리 선희’의 정유미가 화내던 장면, ‘강원도의 힘’의 오윤홍이 차 안에서 화내던 장면).


작업실에서 희정은 춘수에게 “을 왜 그렇게 하세요”라고 화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정은 춘수와 계속 함께 있는다. 어쩔 수 없다. 누군가와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서로 간 솔직한 사이라는 뜻이다. 2부의 춘수와 희정이 그렇다. 그리고 그 솔직성과 담담한 자기 말하기의 힘은 자신을 드러내는 말하기를 함으로써 제대로 사용될 수 있게 된다.


2부의 춘수는 희정이 데려간 카페에서 전신을 탈의하는 대형사고를 저지른다. 거리를 거닐며 춘수는 수영이 자신을 고소라도 하면 어쩌나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희정이 이야기한다. “제가 잘 하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2부의 등장인물들은 말이 가진 신통한 능력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춘수가 진행한 감독과의 대화에서 잘난 체하던 남학생도 말하기의 힘을 보여주고자 감독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캐릭터다.


보라(고아성 분):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는데 질문이 뭔지 모르겠어요.
성국(유준상 분):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거지 뭐. 다 그래(웃으며).




희정과 춘수가 희정의 집 앞에서 헤어지기 전, 희정은 어머니가 잠에 들고 나면 나오겠노라 말한다. 춘수는 몇 시간이고 그 앞에서 기다리겠노라 말한다. 그러나 희정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춘수도 희정이 들어가자마자 발걸음을 돌린다.


그들의 약속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었지만 선명한 힘이 있다. 모든 연인이 평생 서로만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연인도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결과적으로 거짓이 되는 약속이어도 그 순간에는 진심이다. 이 말하기에 힘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생각되는 즉시 바로 말하는 것. 본인의 느낀 바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말하기의 힘임을 감독이 다시 한번 강변하는 장면이다.




홍상수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차이와 반복’으로 해석한 평론가들이 많다. 말하기의 우연성에서 오는 판이한 결론을 차이와 반복이라는 틀에 갖다 맞췄다. 당연한 해석이다. 맞을 수밖에 없는 해석이다. 애초에 ‘차이와 반복’ 개념을 주장한 들뢰즈도 헤겔 등과 달리 운명이 우연성에 있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2부의 춘수와 희정은 1부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으로 퇴장한다. 진정한 자기 말하기의 힘이 주는 서로에 대한 이해, 즉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말하기는 계산되어 있지 않아 우연의 우연성을 낳는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 존재하는 차이와 반복의 변주와 우연성의 역설. 그것이 바로 자기 말하기의 “힘”이다. 욕먹고 힘없어 보이는 말일지언정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이해받으려면 진술하라! 누구나 이해받기 위해 모두가 아무 말이나 꺼낼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우연의 법칙으로 변주된 차이와 반복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내 영화를 보여주는 행위, 나를 드러내어 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행위다. 이해받으려면 말해야 한다. 말하기의 힘이다.


*강원도의 힘(홍상수, 1998)에서 지숙이 삶의 의지를 강원도의 “힘”에서 얻는 것처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인물들이 새로운 동력을 얻는 것은 말에서 오는 “힘”으로부터다. 택시 타고 강원도에 가자던 춘수에게 희정은 광장으로 가자고 한다. 광장- 온갖 말들이 넘실대는 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힘을 얻으려 한다. 그것이 ‘지금’의 춘수와 희정이며 ‘맞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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