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도울 때 가장 노무사 다움을 느낀다
'스물여섯 노무사'
1화 '노무사도 잘린다'에서 계속
메일을 보내자마자 후회했다. 채용 공고도 내지 않은 법인에 메일이라니. 아르바이트도 이렇게는 지원 안 할 텐데, 그때 메일을 보낸 내 심사(心事)는 아직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무턱대고 저 뽑으라 달려든 모습을 대표님이 좋게 봐주셔서 채용이 확정되었다.
노무법인마다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다. 산업재해 보상을 주로 하는 법인이 있고 노동자 측만 대리하는 노무법인이 있고 기업 측만 대리하는 법인도 있다. 옮긴 법인은 이런 일 저런 일 가리지 않고 다 맡아하는 곳이었다. 대표님은 20여 년 가까이 노무사 생활을 하신 분이었고 사수님도 이 법인에서만 5년을 계셨던지라 못하는 일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아무 일이나 척척 잘 해내는 사수님, 대표님과는 달리 모든 일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이나 다 해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갈증이 있었던 영역은 "사건"이었다. 다만 당시로서는 사건을 맡을 수 없었는데, 사건을 맡기 위해서는 노무사회에 직무 개시 신청을 해야 하고 직무 개시 신청을 위해서는 수습이 우선 끝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이라 함은 보통 부당해고 구제 대리나 임금체불 해결을 말한다. 처음부터 노무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오는 희열감 때문이었다. 부당해고를 당하거나 임금이 체불된 사람을 한 번이라도 돕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무 개시를 아직 하지 못해 사건은 맡을 수 없었던 나는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다름 아닌 '상담'이었다.
대부분의 노동 문제는 사건으로 가기 전에 해결되기 마련이다. 또는 사건으로 가기 전까지 영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상담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조언만 드려도 앓던 이가 빠진 것 마냥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스스로 가장 노무사 다움을 느낀다.
그래서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상담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오픈 채팅방을 만들 때만 해도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법이 필요해도 노무사는 가깝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정작 노동법 상담이 가장 필요했던 곳은 내 주변에 있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건설사의 현장에서 아버지와 절친한 포클레인 기사 분이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망인은 건설사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었다. 포클레인도 본인 소유였고, 건설사에서 필요할 때마다 요청하는 일만 맡아서 했기에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본인의 친구가 노동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답답함이 얼마나 컸는지 전화를 걸어 망인이 얻을 수 있는 도움에 대해 여쭤보셨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애타는 목소리에 숨이 턱 막혀왔다.
'스물여섯 노무사' 2화 끝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