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자격사의 직업 윤리가 흔들리는 순간
'스물여섯 노무사'
제7화 '취업규칙'에서 계속
우리 사무실은 1호선, 2호선, 우이 경전철로 환승이 가능한 모 전철역 근방에 있다. 서울지방노동청이 있는 종로 3가와도 가깝다. 접근성이 좋은 탓에 '워킹 손님(누구로부터 소개 등을 받지 않고 직접 법인을 찾아오시는 손님을 말함)'이 많은 편이다.
상담 오시는 분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듣노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드리고 싶은 사연도 있는 반면, 솔직히 상담비를 돌려드릴 테니 나가주셨으면 하는 상담도 있다. 특히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하다 적발되었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는 상담이 그러하다.
실업급여. 근로자 본인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용자로부터 해고당하거나, 권고사직 등을 당했을 때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돈이다. 부당해고가 성립되지 않는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해고당한 근로자들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제도다.
문제는 부정수급이다. 금년 1월부터 6월까지 고용노동부 서천 출장소에서만 95명의 부정수급자를 적발했다. 반환받은 금액은 1억이 넘는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적발되지 않은 부정수급자까지 합하면 대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안 된다.
노무사로서 그 어떤 의뢰인, 내담자라도 성실히 응대해야 할 직업윤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이유로 상담 오는 분들 앞에서는 마음이 선뜻 열리지 않는다. 실업급여의 재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실업급여는 평소 직장인들이 내기 싫어도 내는 4대 보험료를 통해 마련된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된다. 매달 월급의 0.8%(2020년 현재 기준)가 고용보험료 명목으로 원천 공제된다. 내가 받는 실업급여는 누군가들의 십시일반이다. 내가 내는 고용보험료가 누군가의 부정수급으로 허비된다면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부정수급자들은 부정수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실업급여 수급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도 4대 보험 신고를 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4대 보험 기금으로 본인의 실업급여는 수급받으면서도 정작 본인의 월급에서는 단 한 푼의 4대 보험료도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은 부정 수급한 내담자에게 노무사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랄 것이 얼마 없기도 하다. 특히 예전과 달리 노동청 부정수급 조사과에 계신 조사관들이 부정 수급인과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자료의 종류와 양이 확연히 늘어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된 후라면 그 어떤 법률적 조언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조사관들이 어떤 자료를 요구하는지는 공익을 위해 여기 밝히지 않겠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제105조(부정행위에 따른 추가징수 등)
① 법 제62조 제1항에 따른 추가징수액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에 따라 지급받은 구직 급여액의 100분의 100으로 하되...(중략)
부정수급이 적발되면 부정 수급한 금액뿐만이 아니라 그 금액의 두 배까지 토해내야 한다. 이를 알고서도 은폐한 사업주 역시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부정수급 등의 검색어를 통해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꼭 자진 신고하도록 하자. 자진신고 시 검사가 보통 불기소 처분을 내려 전과가 생기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스물여섯 노무사' 8화 끝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