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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Nov 09. 2023

말이 가지는 힘에 대해

언령, 고토다마 신앙과 게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만화 캐릭터가 어떤 기술을 쓸 때, 기술 이름을 외치거나

몇 줄에 달하는 주문을 외워서 사용하곤 하죠.


저렇게 기술 이름을 외칠 때

가서 때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해 본 적 있지 않나요?




'언령(言霊:고토다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각종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서브컬처 콘텐츠 시장을 점령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시작된 개념인데요,


말과 소리에는 힘이 있어서,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일종의 신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신앙이 있죠.

속담 '말이 씨가 된다' 라거나, 설날에 하는 덕담 등이 그 예예요.


이렇게 말, 언어에는 힘이 있다는 생각은

불교의 '만트라', 기독교의 '로고스'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금씩 존재하지만


특히 일본에서 언령, 고토다마라는

구체화된 개념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말을 뜻하는 일본어 '언(言:고토)'과

어떤 일이 일어난다에서 일을 뜻하는 '일(事:고토)'가 발음이 같고,

실제 고대 일본인들은 이 둘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로 하면 곧 일어난다' 요런 느낌으로요.




자, 그럼 이걸 대입해 볼까요.

여기서부터는 제 뇌피셜입니다.


만화나 게임 등에서 캐릭터가 필살기나 기술을 쓸 때

기술이름이나 주문을 외치는 것이

고토다마, 언령신앙을 기반으로 했다는 거죠.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이런 영창 과정의 대사나 연출이


콘텐츠 소비자, 특히 주 소비층인 소년들이

충분히 '겁나 멋있어'라고 느낄 수 있게 자극했다는 겁니다.


갤럭티카 팬텀!! ㅋㅋㅋ


지금은 여러 악재가 겹쳐 인기가 시들해

잊혀 가고 있는 게임 '오버워치'에서도

캐릭터가 궁극기를 사용할 때 전용 대사를 외칩니다.


제일 유명한 건 '겐지'의 '용검', 'D.Va'의 '자폭'이 있겠네요.

한 때 피시방에 가면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였어요.


아무튼 처음 오버워치를 하면서 궁극기 대사를 들었을 땐

무릎을 탁 쳤어요. 와, 진짜 기획 잘했다, 라고요.




게임 기획 측면에서 볼까요.


MOBA, 유저 간 대전 게임에서는 강력한 기술에 대해

밸런스 상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한 명의 궁극기가 상대 전체를 전멸시킬 수도 있는

오버워치 같은 게임에서는 이를 사용했을 때


'도망가던지 막던지, 궁극기 쓴 유저를 킬 하던지 해'라고

상대편이 대처할 만한 거리를 주는 것이 밸런스 상 필요하죠.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


그렇게 오버워치 개발팀이

궁극기 사용 '얼럿(Alert)'으로 활용한 것이

캐릭터 궁극기 전용 대사인 거죠.


실제 오버워치가 인기를 끌면서 궁극기 대사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게임이나 오버워치를 하지 않는 사람도 들어봤을 만큼요.


게임이 유저에게 주려는 멋진 경험과

시스템 밸런스를 함께 챙긴 훌륭한 기획 사례죠.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게 본 영화 중에

'Arrival'이 있습니다. (한국 제목 '컨택트')


'사람의 사고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피어-워프'가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 짓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 지어 사고할 수밖에 없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원으로 연결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외계종족은 이를 기반으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외계종족의 언어를 배우고

어떠한(스포방지) 결론으로 도달(Arrival), 한다는 내용이죠.


사용하는 언어의 방식에 따라 문명마다

극심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그런 설정을 가진 이야기입니다.


보실 거라면 두 번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왜냐고요? 보시면 압니다. 말씀드리면 재미가 없으니..




개인적으로도 말의 힘을 상당히 믿는 편이고,

부정적, 공격적인 말에 민감한 편입니다.


그래서 말을 하는데 조심스러운 편이고

부정적, 공격적인 말 대신 다른 말을 찾고 돌리다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 보니

직설적이지 못하고 돌려 말하거나 생각하는 동안


쓸데없는 눈치를 보게 되고,

앞뒤가 안 맞고 스스로 변명을 하게 되는 몹쓸 사람이 돼있더군요.


그래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나 혹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말의 힘,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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