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 꿈이 모두 달랐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소방관. 아마 어느 소방관 다큐멘터리를 보고
인명을 구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배우가 하고 싶었죠.
때론 재벌 2세가 될 수도 있는 여러 색을 가진 인생을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고등학생 땐 게임에 심취해서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하기 싫어했으니
시나리오를 쓰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 했었죠.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게임 속 역할 이야기입니다.
특히 온라인 RPG(Role Playing Game)에서
게임이 유저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죠.
여기서 말하는 역할이란 단순히 내 직업이 무엇인지
혹은 공격, 방어, 치유 담당 등의 포지션 같은
좁은 의미의 역할이 아닙니다.
조금 더 근본적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가져야 하는.
정확히는 게임이 명확하게 유저에게 쥐어줘야 하는.
게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빠른 플레이를 지향하는 유저들에게 스토리는
그저 스킵이 되어야 하는 귀찮음의 영역이지만
게임의 스토리와 세계관.
그 속에서 유저의 역할이라는 것은 게임의 뿌리와 같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대한 답을
유저들은 무시하더라도
게임은 꾸준히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너와 내가 싸우는 이유가 생기고,
유저가 게임에 돈도 쓰게 할 수 있어요.
특히 온라인 RPG의 경우 서비스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이 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해진 볼륨만 소화하면 이야기가 끝나는
싱글 플레이 게임보다 온라인, 특히 온라인 RPG에서
이야기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역할 부여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RPG에서 유저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2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먼저 철저히 유저에게
악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해나가는 영웅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유저가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여러 일을 겪고 성장해 나가며
이야기 흐름을 유저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저가 패배하고 끝이 나면 안 되기에,
다소 뻔한 진행이 불가피하고 클리셰도 많습니다.
국내 온라인 RPG '로스트아크'가 여기에 속합니다.
반대로
유저에게 세계를 주도하는 영웅이 아닌,
일개 병사나 용병에 가까운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물론 때때로 이 유저들이 적을 무찌르거나 해서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절대 이야기 흐름이 유저 중심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게임 세계의 이야기 흐름을 주도하는 유저보다 더 큰 세력이나 인물 등의 설정이 있고,
유저가 이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 흐름을 팔로우업 하는 방식입니다.
유명한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국내 게임으로 '검은사막'이 이에 해당하겠네요.
언뜻 보면 두 방식에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각 방식마다 유저에게 줄 수 있는 역할에 차이에서 오는
경험이 다릅니다.
전자는 용사가 되어 게임 속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우러러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겠고,
후자는 "어 왔어? 우리 저놈 잡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게임 시스템 설계 상으로도 여러 차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거기까지 비교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가 개발을 실제로 하는 것도 아니니 섣불리 글을 쓰다 사실과 다를 수도 있겠고요.
어릴 때는 대학생, 혹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는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내가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일까, 에 대한 고민.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 고민은 아마 생의 마지막까지 하지 싶습니다.
다만 현재 내게 주어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답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맡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