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변화의 한 변곡점을 지켜보며
게임은 '아~' 소리가 나오는 취미다.
직장인밴드 해요, 헬스 해요, 책 읽어요,
골프 해요, 별 보러 다녀요 기타 등등
들으면 '오~' 소리가 나오는 취미는 아니다.
취미가 뭐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게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내가 게임 전문 매체 기자 일을 했던 것은
게임을 좋아하고 글을 쓸 수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작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다들 어릴 때 일하면서 하나씩은 있었지 않았나.
목표 말고 꿈.
앞으로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더 나은 인식을 가지게 될 테고
거기에 내가 좋은 글로, 기사로 일조하고 싶다는 것.
그게 그때 내 작은 꿈이었다.
짧던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만 해도
공중파 등 매스미디어에서 게임과 관련된
(긍정적인) 이슈를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나 같은 사람들에겐 큰 일이었다.
이제는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공중파 예능에 출연하고
e스포츠 결승전이 저녁 뉴스에 소개됐으며,
현직 대통령이 우승팀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는 등
예전보단 확실히
게임이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즐겨온 세대가
나이를 먹고 점점 사회 주류층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까.
시대가 바뀌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처지는 천지개벽 수준이다.
과거 피시방 전원을 내려버리는
전설적인 실험 뉴스는 너무도 유명했고
세월호 사건 다음날 아침,
전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던 때
공중파 뉴스에서 세월호 특보를 진행하던 도중
한 게임 중독자가 가족을 살해하고(게임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난 사건)
다른 한 중독자는 성폭행을 시도했다(오히려 피의자 측이 게임을 핑계로 선처를 호소했으나 기각됐다)는
뉴스가 판사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편집하면서까지 보도되기도 했으며,
게임을 하면 뇌가 파괴된다는 유사과학을 근거로
게임하는 사람은 정신과치료를 받게 해야 된다는 논리를
정신의학과 출신 정치인을 등에 업고 펼치는 단체도 있었다.
셧다운제, 중독법 발의, 게임산업 특별세 등등..
자원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으로
외화를 크게 벌어들이고 있는 산업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어떤 사명감이 단전 밑에서부터 끓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일조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은 흘러 시대는 바뀌었고
인식은 점차 바뀌고 있다.
페이커가 이번에 들어 올린 우승컵을
공중파 뉴스에서 다루는 걸 보며
그 우승컵이 인식 변화의 한 변곡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관적인 희망사항을 빼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게임은 여전히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많다.
그러니
'아~' 말고 '오~'소리까지 듣지 않아도 괜찮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적어도 좋은 이미지를 위해 게임하는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게임을 하냐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