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Cancer' 10편, 췌장암과 함께 살아가기
췌장암과 담낭ㆍ담도암은 사람과의 공존을 잘 허락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갑부들마저 그들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한 해 9000여 명이 췌장암이나 담낭ㆍ담도암에 걸린다. 적지 않은 숫자다. 암 종류 중 발생빈도 7위이며 늘어나는 추세다. 이 어려운 병을 의사는 또 환자와 그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힘겨운 문제이지만 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비록 그 답이 '합격'을 보장해주지 못할지언정, 빈 답안지를 내는 것 또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전이된 췌장암에도 희망은 있다.
좋은 소식으로 시작하자.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4가지 항암제를 섞어 투여하는 새 치료법은 기존 약에 비해 전이된 췌장암 환자의 생존기간을 63% 증가시켰다. 이규택 삼성암센터 췌담도암센터 교수는 "이 방법을 현장에 적용하면 앞으로 췌장암 치료에 큰 발전이 기대된다"며 "보건당국의 행정절차가 하루빨리 진행돼 환자들이 이익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췌장암 환자에게 쓰는 대표적인 약은 '젬자'다. 위 연구에서 젬자를 쓴 전이성 췌장암 환자는 평균 6.8개월 생존했다. 하지만 항암제 4가지를 합한 'FOLFIRINOX(폴피리 녹스)' 투여법은 11.1개월이다. 이 정도 생명연장은 치명적 난치병 치료에 있어 매우 큰 성과다. 특히 다른 암에 비해 신약개발이 더딘 췌장암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 교수는 "4가지 약제를 쓰다 보니 부작용이 조금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젊은 췌장암 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체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에게 특히 유망한 치료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싸우자, 의사와 함께
췌담도암 치료의 관건은 수술할 수 있을 때 발견됐는가 아닌가이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하다면 의사는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게 된다. 병원에 따라 수술 가능 판단이 다를 수 있으므로, 다른 병원 의사를 만나 세컨드 오피니언(제2의견, second opinion)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교수는 "수술할 수 있다는 병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선택하라. 특히 수술 경험이 많고 협진이 잘 되는 대형 센터를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수술이 힘든 경우다. 췌담도에는 중요 혈관과 신경이 많이 분포돼 있어 암덩어리를 제거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췌담도암 생존율이 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적극적으로 싸울 것이냐 아니냐이다. 싸우겠다면 항암제와 방사능치료가 진행된다. 체력이 뒷받침되면 더 강하게 쓴다. 이 교수는 "평균 6개월 생명 연장과 결과가 불확실한 항암치료를 놓고 결정적인 선택을 하는 건 매우 어렵고 철학적인 문제"라며 "하지만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의사를 믿고 똘똘 뭉쳐 병과 맞서야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적 혹은 작지만 확실한 가능성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의 선택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생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고 개인적 가치관이 크게 작용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의사들이 안타까워하는 점은 "병을 이기고 싶다"던 많은 환자들이 역설적으로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요양병원 등을 찾아 조용히 생을 정리하고자 하는 말기 환자를 막기는 어렵다. 그것도 가치에 따라 옳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치료를 원하면서도 병원을 믿지 못하고 솔깃한 '희망'에 휩쓸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각종 대체의학에 마지막 희망을 기대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의 결정을 비난할 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교수는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며 말을 이어갔다. "의료진과 상의하며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효과를 볼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은 중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의사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간 환자가 최선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례는 본 일이 없습니다."
시중에는 '산에서 완치됐다, 나는 이런 음식을 먹고 암을 극복했다'는 솔깃한 조언들이 널려 있지만 이 실장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이 최종 검사까지 받아 암이란 것을 또 말기라는 사실을 조직학적으로 확인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확정된 말기암이 맞다면 말 그대로 '기적'이겠죠. 그런 기적의 확률보다 병원이 제공하는 표준치료법의 성공 가능성은 수십 배 높을 겁니다. 환자는 병원에 있을 때 가장 잘 관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마약성 진통제 무조건 피하지 마세요
췌장암은 혈관이나 신경 침범이 빨리 되기 때문에 통증도 심하게 나타난다. 조절되지 않는 통증엔 마약성 진통제를 쓴다. 많은 환자들이 '마약'을 쓴다는 데 거부감을 갖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단기간 사용하기 때문에 중독 위험은 없다. 통증이 조절돼야 식사도 가능하며 좋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암세포가 누르고 있는 신경을 방사선 요법으로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췌장암 수술 후 알아둬야 할 것들>
1. 혈당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췌장은 혈당조절에 꼭 필요한 인슐린을 생성해 혈중으로 분비한다. 췌장을 수술하면 원래 당뇨가 없던 사람도 수술 초기에 일시적으로 혈당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
2. 흡수 불량이 올 수 있다=췌장과 담낭은 음식물 흡수가 잘 될 수 있도록 소화효소를 장내로 분비해준다. 췌장 수술 후에는 소화효소 분비 감소로 음식물 소화가 느려질 수 있다.
3. 어떤 음식이 적당한가=소화를 도와줄 수 있도록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섭취한다. 췌장의 소화액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음식 선택에 주의한다. 몇 개월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므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이나 음료수부터 시작해 적응한 후 미음, 죽, 밥 순으로 서서히 식사를 진행한다. 대개 2주 정도 죽을 먹는 것이 권장된다. 수술 후 당뇨병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 당질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식욕저하가 심하거나 섭취량이 부족한 경우 조금씩 먹는 것은 괜찮다.
4. 밀가루 음식은 먹어도 되나=천천히 먹는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영양면에서 균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면이나 빵을 먹을 때는 야채나 고기, 계란 등을 곁들이도록 한다.
5. 어떻게 먹어야 하나=소량씩 자주, 천천히 먹는다. 소화를 돕기 위해 2시간 간격으로 하루 5∼6회 정도 먹는 것이 좋다. 20번 이상 씹어서 천천히 먹도록 한다. 과도한 식사량은 좋지 않지만 영양섭취를 충분히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아시아경제. 2011년 12월 1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