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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소하 Mar 19. 2020

2010년대 결산 : 국내 음악 (10위 ~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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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전자양, 『소음의 왕』, Self-Released, 2015.09

전자양은 이전부터 그랬지만,『소음의 왕』에 이르러서도 기괴한 모습임은 매한가지였다. 다섯 곡에 2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그 안에서 전자양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기괴한 모습을 바꿔가며 등장했다. 첫 트랙 「거인」은 재생되는 1분 30초 동안 반복되는 비형식적 리듬과, 그 위를 유영하는 날카로운 전자음들로 혼을 빼놓았고, 다음 트랙 「우리는 가족」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리듬 위로 음높이의 극단을 넘나드는 목소리로 정신을 흔들었다. 이어지는 「생명의 빛」 역시 마찬가지인데, 다소 익숙한 형태로 전개되다가도 독특한 목소리가 만드는 효과음들에 이은 가늠하기 힘든 변주가 더해지며 보다 거세게 반응을 이끌어낸다. 「소음의 왕」에서는 더더욱 난잡하게 쏟아지는 목소리들의 중첩과, 단순한 독해와 이해의 시도를 거부하는 표현들로 가득한 가사가 혼란을 야기한다. 그렇게 마지막 트랙에 도달해서야 청자는 전자양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을 오래도록 복습시키는 8분간의 소리들을 지나고 나서야 청자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이상하고도 독특한 앨범이다. 『소음의 왕』의 모든 트랙은 전혀 길지 않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이들 모두가 제각각의 괴상한 모습을 띠고 있고, 말미에는 그 괴상한 형상에 빠져드는 내 모습마저 괴상해 보이는, 정말 괴상한 매력을 가진 앨범이다.


『소음의 왕』에서 전자양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밴드 형식을 차용했다거나 다양한 창법을 활용했다는 변화 역시 적시할만하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전자양은 이전의 이미지를 상기시킬 여지를 남겨두었고, 이는 그들의 가사에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가족」의 "유전자는 악마의 주사위 놀이 같아 / 저주받을 너는 나와 가장 닮은 존재"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소음의 왕」의 시작에서 "마그마 같은 피는 손등 위로 올라 / 모래를 털고 핥을 때마다 쇠의 맛이 나"를 아주 높고 청명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순간에는 그저 실소만이 나게 되는, 전작에서도 빛을 발했던 독특한 매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독특함으로부터 형성되는 전자양의 이미지 역시도 계속하여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음의 왕』은 이렇게 독특한 표현과 사운드가 괴상함의 수준까지 올라왔으며, 그 괴상함 또한 연거푸 청자에게 매력으로 접근했다. 결국 독특함이 괴상함으로 진화하는 과정마저도 우리가 전자양의 매력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9

 

실리카겔, 『실리카겔』, 붕가붕가레코드, 2016.10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아이덴티티마저 독특하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멤버들이 모여있으며,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기도, 한꺼번에 뭉쳐서 활동하기도 하는, 심히 다채로운 구성의 밴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그들의 첫 정규앨범 『실리카겔』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속된 멤버 대부분이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소속된 VJ들도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실리카겔』에서는 전반적인 프로듀싱의 틀이 일관되지 않으며, 단순히 분위기의 차이로 일축할 수 없는 어수선함이 존재한다. 허나 그 어수선함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실리카겔이라는 아티스트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의 소리는 전혀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기타의 펑키한 소리, 신디사이저의 몽환적인 분위기, 드럼의 신나는 리듬 등이 음악의 전면으로 치고 나온다. 그렇기에 본작에 수록된 곡들은 때로는 펑키하고, 때로는 몽환적이며 때로는 신난다. 이렇듯 다양한 분위기를 만드는 이러한 요인들이 앞서 말한 어수선함의 주범일지라도, 그 어수선함이 만드는 분위기가 난잡함이 아닌 다양함으로 변화하기에 이들의 매력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작품은 작가를 따라가게 되어있고, 『실리카겔』역시 실리카겔을 따라간다. 그리고 『실리카겔』이 비록 어수선할지라도, 이 또한 실리카겔이 만드는 매력으로 둔갑하게 된다.


다양한 멤버가 프로듀싱 참여한다는 것은 제법 고된 시간이 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동일한 의미를 가진 수많은 관용어가 존재하는, 우리의 속담으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실리카겔은 비록 배가 산으로 가더라도, 그 과정이 전혀 지루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배가 산으로 가게 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에 청자가 마음을 편히 두고 감상에 몰입할 수 있다. 우리는 『실리카겔』 안에서 관능적이고, 치밀하며, 몽환적이고, 독특하고, 귀엽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봐야 하고, 모든 트랙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마치 꿈을 꾼 듯 헤매거나, 다양한 분위기에 휩쓸린 듯한 혼란에 잠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을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채로움으로 무장했으며, 조금은 혼란스러울지라도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혼란이 허망으로 변하게 두지는 않는다. 이렇듯 다채로운 매력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행여나 이로 인한 난잡함을 야기될 수 있다는 걱정을 이겨낼 만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실리카겔』에 개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리카겔이 많은 것을 겪지 않은 신인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 용기는 제대로 청자에게 먹혀들었기에, 우리는 1이 아닌 1+1+1+1+1=5의 실리카겔을 사랑하게 되었다.




8


 

모임 별,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Club Bidanbaem, 2011.11

요즈음에 흔히 '케미’라고 말하는, 우정이라던가 사랑과는 다른 느낌의 단어가 있고, 그러한 케미가 만들어내는 인물과 그룹의 매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임 별은 오래된 친구, 그리고 그 친구들 간의 술자리에서 출발한 밴드이기에 더욱 깊은 케미를 뽐내며, 그 중심에 위치한 조월과 조태상 형제를 핵심으로 뭉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만드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통해 많은 팬들을 그들의 매력으로 잠식시켰다. 모임 별은 2001년부터 7년에 걸쳐 [월간 뱀파이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총 여섯 차례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 안에는 전자음이 핵심으로 작용하지만 다양한 악기와 그것들이 만드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음악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월간 뱀파이어]의 수록곡들을 모아 발매한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들의 베스트 앨범과도 같았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임 별이라는 모임의 추억을 담은듯했다.


그들이 본작에서 의미한 "아편굴 처녀"라던가 그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하게 밝히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제목이 표방하듯 본작에 내포된 핵심 주제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처녀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명료하게 느껴졌다. 처녀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특정한 인물과 그 군상을 특정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로서 소리를 선택했으며, 그 소리가 변환될 수 있는 다수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가 전달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차분하고 느리다. 그 느릿한 소리가 만드는 분위기는 공간을 형성하고, 그 공간들이 곳곳에서 겹치며 더 큰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의 내부와 틈 사이를 또 다른 소리들이 파고들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야기가 그저 정형화된 문장을 통해서 전달되어 올 것이라는 편견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러한 방식을 수용했을 때 비로소 모임 별이 만드는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본작은 분명 다채로운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품이다. 우리는 본작을 새로운 방식으로 감상함으로써 목소리와 신디사이저, 기타, 드럼 등이 만든 소리로 이야기가 전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방식이 머릿속에서 다시금 기억되는 순간, 우리는 이야기가 드럼, 기타, 신디사이저, 목소리 등 의 소리로 변환되는 신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7 


아침 (achime), 『Hunch』, 붕가붕가레코드, 2010.06

붕가붕가레코드의 홍보 글에서는 『Hunch』에 대해 "동시에 미래에 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직관적인 것들, 현실주의자들은 부정하는, 하지만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그런 낙관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Hunch』는 일방적으로 낙관적이지 않다. 비단 우울한 색채의 「이 비가 그친 뒤」나 「파도색 신발」뿐만 아니라, 신나는 리듬과 기타 리프가 재생되는 「맞은편 미래」와 「무표정한 발걸음」의 말소리에도 암울한 색채가 가득하다. 뚜렷한 공간을 만드는 기타의 사운드가 확연히 비침과 동시에 "빠빠야"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불신자들」은 어딘가 아련하고, 본작에서 가장 속도감 있는 「거짓말꽃」의 리듬은 동시에 애처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아직  『Hunch』를 낙관적으로 본다면, 그 이유는 「Pathetic Sight」와 「매일매일」에 있을 것이다.


「Pathetic Sight」 역시도 그다지 낙관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청명한 기타 소리와 명랑한 드럼 리듬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Pathetic Sight」에는 가볍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채워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분위기의 노랫말이 자리 잡았다.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녀석의 차"를 타고 간 해수욕장에는 "거대한 스크린"같은 밤바다가 펼쳐져 있고, "술기운"으로 겨우 용기 내어 말을 걸어 "취해있는 여자아이들"과 가진 시간은 그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헤어짐의 그림자"를 이겨내지 못한 채 추억을 모래사장에 남기게 되었으며, 그 추억이 파도를 타고 멀리 돌고 돌다가 다시금 그 바다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 사항을 남긴 채 끝맺고 있다. 이는 필히 밝지 많은 않은 이야기이다. 단지 한순간의 만남이 그려지고, 그 만남은 필연적인 이별을 담고 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아침이 이야기했던 낙관적인 감정이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Hunch』에서 표현되는 주제의 기본적으로 청춘의 표상을 내포한다. 청춘은 이유 모를 고독에 빠지거나(「맞은편 미래」),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기도 하고(「무표정한 발걸음」), 짧은 순간을 위해 불과 같이 열정을 쏟거나(「불꽃놀이」) 애절한 기억 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이 비가 그친 뒤). 그럼에도 본작에서 청춘은 잊힐지 모를 추억을 위해 숨 가쁘게 뛰고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말미에 기억이 흐릿해져 의미가 무색해지더라도,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아 실현되는 추억은 평생을 견딜 소중한 동기가 된다. 이는 이미 「Pathetic Sight」에서 암시되었으며, 마지막 트랙 「매일매일」에 당도해서는 그 의미를 확고히 만든다. 우리는 먼 미래에 청춘이 한낱 기억으로 치부될 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랑하고, 도전하는 것임이 틀림없음을 「매일매일」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에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쏟고 고난을 겪으면서도 다음 추억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청춘을 보낼 것임을 아침은 예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춘은 많은 이들에게서 실현되고, 실현될 것이기에 아침이 의미한 청춘을 모두가 상기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다.




6

 

이민휘, 『빌린 입』, Self-Released, 2016.11

『빌린 입』이라는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기관인 '입’은 당연하게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한 동물들은 입을 통해 음식을 먹고 호흡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입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있어 의사소통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소통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관은 분명 입일 것이다. 특히나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개인의 감정이나 의견을 전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입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사람은 입을 통해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어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허나 본작의 제목인 『빌린 입』이라는 단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인간이 타인의 입을 빌린다면, 혹은 타인에게 입을 빌려준다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지는 쉽게 유추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빌린 입이 작용하는 방식이 존재한다면, 이는 인간이 수천 년간 인지해온 보편적인 '입’의 사용되는 방식과는 반드시 다를 것임이 확실하다.


이민휘는 『빌린 입』을 통해 상징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섬뜩한 느낌이 드는 「거울」에는 네발로 거울에 들어가는 나와 이를 바라보는 네발의 어머니가 있고, 이후 「깨진 거울」에서는 거울에서 벗어난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부은 발」과 「꿈」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늘어놓거나, 무기력한 악기들의 연주 소리로 채워진다. 그리고 제목과 직결되는 가사를 내포한 「받아쓰기」에서 『빌린 입』의 핵심을 맞이할 수 있다. 「받아쓰기」는 본작의 감상에 있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 앞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은연한 비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존에 우리 사회에 존속하는 가부장제의 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예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본고의 피드백 과정에서 제기된 조지환의 말을 빌렸다.). 혀를 잃어버린 딸과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그 앞에 등장한 인물로 인해 딸은 발화의 기회를 얻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그제야 본인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지만 그 결말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마무리되는 「받아쓰기」의 전개는 청자에게 암울한 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마지막 트랙인 「침묵의 빛」으로 넘어가서는 끝없이 어두운 첼로와 피아노 소리만이 존재하게 된다. 「빌린 입」에서 「받아쓰기」까지 이어지는 서사의 엔딩으로서 작용하는 연주곡은 한없이 무거운 듯 하지만, 그 연주가 아닌 곡의 제목에 집중한다면 일말의 희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빌린 입』의 화자가 6개의 곡이 재생되는 동안 겪은 일을 알고 있다. "해소되지 않은 침묵"의 이유는 "그대 입과 그대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비통한 이야기와(「빌린 입」), "한 번의 실수""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 무너질지 모르는 산을 "구원을 찾"기 위해 올랐으며, "네 발로" 들어갔던 (「거울」) "거울을 깨뜨"리고 난 뒤 비로소 자신에게 지난 세월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깨진 거울」),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나의 입을 빌어 "큰소리로 고백"하는 (「받아쓰기」)화자를 지켜보았다. 이런 억겁의 시간에서 우리가 간절히 빌었던 것은 화자가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침묵의 빛」은 그 화자가 겪었던 침묵의 시간을 빛으로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희망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일차원적 해석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려있는 결말을 맞이한 사람은, 그 결말을 본인의 희망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말을 나의 바람으로 그려내자면, 나는 반드시 화자가 '빛’을 보게 되었을 장면을 떠올렸다.




5

 

3호선 버터플라이,  『Dreamtalk』, 사우스폴 사운드 랩, 2012.10

어떠한 아티스트를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그들의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라도 결국) 발견했다는 행복과 그 시기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며 발생한다. 그 인물은 어떻게든 작품과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다가도, 그들이 작품을 마음껏 실연하던 그 시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인지하고 나서는 곧장 허망함에 빠지게 된다. 사설이 길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서라도 본인이 뒤늦게 3호선 버터플라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해야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에는 시대가 필요 없고, 『Dreamtalk』가 주는 감상은 언제나 긍정적이었기에, 또 다른 어떤 작품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그런 점에 있어서 『Dreamtalk』 는 내게 있어 너무도 고마운 앨범이다. 본작은 3호선 버터플라이가 내놓은 지난 3집의 음악을 총망라함과 동시에, 그들의 휴식 기간이 꽤나 길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모습이 건재함을 명확하게 설파하는 음반이었다. 아예 그들을 알지 못하는 청자가 본작을 감상 하더라도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의 록-발라드적 분위기와 남상아의 목소리만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고, 혹은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의 독특한 언어체계와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본작을 특정 계절, 특히 여름에 들었다면 「Hello」와 「너와나」의 청량한 매력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결국 앞선 모든 것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제주바람 20110807」의 장엄함을 맞이하는 순간 경험할 압도감은 모든 청자를 황홀경에 빠뜨리거나, 혹은 나와 같이 가슴 한켠에 억울함을 품는 자들의 비애를 해소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적으로 『Dreamtalk』는 3호선 버터플라이가 뽐낼 수 있는 모든 매력을 온 힘으로 발산하는, 다시 말해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환경과, 또 그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일절 상관없는, 그저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너무도 매혹적인 음악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청자는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많은 의견을 형성하게 되며, 그 의견에 대한 근거와 감상을 축적해 나감으로써 결국 본작이 그리고 있는 수많은 의미를 이해하고 3호선 버터플라이가 십수 년의 활동을 통해 그려온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놀라운 감상의 경험을 제공받는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인디밴드가 형성되고 해체되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모든 신인의 등장은 반길만한 것이었지만, 그룹의 해체는 매 순간 팬들에게 뼈아픈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허나 우리는 『Dreamtalk』를 통해 결성 10주년을 넘긴 밴드가 여전히 능력을 과시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고, 이는 팬들에게도, 함께 시장을 이끄는 동료에게도 한 줄기 희망으로 빛나게 되었다. 또한 본작이 발매된 지 8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그들이 지난 8년간 또다시 훌륭한 앨범을 냈다는, 또다시 희망을 선사한 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계속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4

 

E SENS, 『The Anecdote』, BANA, 2015.08

201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은 국내외적으로 지대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중에서도 힙합시장이 이룩한 발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으로 자리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그러한 성장을 온전히 전체적인 힙합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담론을 형성했지만, 어찌 되었든 힙합이 현재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갖게 된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원동력이 된 수많은 아티스트와, 그 아티스트들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이센스의 『The Anecdote』이다. 물론 본작을 설명하기에 앞서 발매하기 이전까지의 경과 역시 빼놓을 수는 없다. 본작이 발매된 2015년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센스는 『The Anecdote』를 발매할 당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시장의 커다란 이슈였던 컨트롤 디스전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으며, 이에 앞서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힙합 듀오 슈프림팀(Supreme Team)의 멤버이자, 더 먼 과거에는 힙합 팬들의 주목을 받는 슈퍼루키로 등장했다. 이센스가 등장한 그 시점부터 시작된 인상적인 내력을 거쳐 출현한 『The Anecdote』는 발매 전부터 동료들의 숱한 극찬을 받으며 기대치를 한껏 드높였으며,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성과를 내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The Anecdote』의 내부에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 장본인인 이센스는 한 시간을 할애하여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센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고, 그 감정의 서사가 분명하기에 이야기가 힘을 가진다. 세상에 부딪혀 본 적 없어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과 그보다 앞선 시기에 위치하는 유년기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도치시키면서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 전후로는 지방에서 태어난 소년이 힙합에 빠져들며 자신의 모든 시간을 꿈을 향해 쏟아부었고, 그로 인한 고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본인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덤덤한 말투로 풀어낸다. 전술했듯 그의 이야기는 과히 개인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솔했고, 이를 훌륭한 서사를 통해 풀어내었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인 담화로 거듭났다. 또한 그 이야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때로는 강력하게 피력하는 이센스 특유의 플로우와 곡의 도처에 배치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쾌감을 선사하는 라임 배치로 표현되어 그 진가를 더했다. 물론 이를 공조하는 오비(Obi)의 프로듀싱은 적절한 만큼의 담백함과 화려함 사이의 자리를 꿰차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도 않는 완급조절을 선보였다. 이렇게 다수의 부분에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두 아티스트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센스가 건네는 이야기는 청자에게 재밌는 순간의 연속이자, 그의 과거를 함께 회상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The Anecdote』의 성공에는 앞서 언급했듯 이센스와 오비의 역량도 중요하게 자리했으나, 가장 큰 비결은 좋은 시나리오에 있었다. 소비자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생성되는 부가적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퍼지는 이야기들로 본질이 흐릿해지더라도, 결국 이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 이야기의 본질을 만든 주인공은 이를 원동력 삼아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한 순환을 통해 2019년에 『이방인』이 등장했고, 이센스와 그의 동료들은 힘을 합쳐 더 발전하는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분명 2015년은 한국 힙합 팬들에게 더없이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본작을 포함 하여 딥플로우(Deepflow)의 『양화』, 와비사비룸의 『물질보다 정신』 등의 무수히 많은 작품이 등장했으며, 다양한 루키가 등장하고 기성 래퍼들 역시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이 형성한 한국 힙합의 물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있던 이센스와 『The Anecdote』는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채 많은 래퍼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The Anecdote』를 2010년대 한국 힙합의 행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임을 분명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3


JAMBINAI (잠비나이), 『A Hermitage (은서;隱棲)』, The Tell-Tale Heart, 2016.06

잠비나이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고, 그 기저에는 그들이 재생하는 소리와 그 소리의 근원인 악기가 있다. 현재는 드럼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최재혁과 유병구가 멤버에 추가되었지만, 얼마 전까지의 잠비나이는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이 국악기를 필두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그룹이었다. 그들은 분명 피리, 태평소, 해금, 거문고 등의 악기를 사용했지만, 이는 기존의 것과 구별되는 색다른 소리를 만드는 악기로서 작용한다. 실제로 그들이 선사하는 국악기의 소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날카로우며, 때로는 거칠기도 한 소리를 낸다. 그러한 소리들이 모여 중첩됨으로써 잠비나이의 음악은 출발하고, 그 중첩이 해체되거나 정리되는 과정을 통해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비교적 익숙한 풍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거칠고 날카로우며, 이들이 겹겹이 쌓여 진행되는 음악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잠비나이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었으며, 그 새로운 것을 통해 익숙한 것을 만들어내는 순환의 과정을 선사했다.


그리고 2016년에 들어서 『A Hermitage (은서;隱棲)』(이하 『은서』)가 등장했다. 은둔처(Hermitage), 또는 은거하는 일/은거의 장소(隱棲)를 뜻하는 제목에 맞추어 『은서』는 전작 『Differance (차연, 差延)』보다 어둡고 습한 기운을 내재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있었다. 『은서』는 초장부터 모든 소리를 파괴하듯 시작하는 「Wardrobe (벽장)」과, 곡의 끄트머리에 도착해서야 무섭도록 달리는 타악기로 맺어진 「Echo Of Creation」이 연결되며 발걸음을 뗀다. 이어지는 트랙들은 어떠한가, 「For Everything That You Lost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의 분위기는 이전 트랙과 유연하게 이어질 듯하다가도 다양한 악기들이 점차 가세하고, 목가적인 듯 동시에 어두운 소리들을 창조해내는 찰나를 창조한다. 이는 앞에서의 두 트랙과 앞으로 재현될 나머지 다섯 곡의 연결고리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을 가득 메우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Abyss (무저갱)」의 소리는 훨씬 무겁고 두꺼워져 있다. 거문고와 해금, 기타, 드럼의 소리들은 청자를 순식간에 흡수하며, 곧이어 등장하는 이그니토(Ignito)의 낮디 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은 본작의 하이라이트를 예고하는 신호와 같다. 그 이후로 등장하는 트랙들도 여전히 매끈하게 연결되며, 이 유기성은 악기의 노이즈와 새로운 소리로서 점철되어 있기에, 이후의 트랙들마저 본연적으로 잠비나이의 것임을 입증된다. 「Deus Benedicat Tibi (부디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에서는 마치 고궁에 직접 가서야 들을 수 있을 우렁찬 태평소가 시작을 알리고, 그 밑바탕에는 어른거리는 노이즈가 깔려있으며 곡의 중반부에 이르러 그 노이즈와 태평소가 만드는 긴장감이 터져 나온다. 이는 이어지는 「The Mountain (억겁의 인내)」와 「Naburak」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발현되며, 마지막 「They Keep Silence (그들은 말이 없다)」에 이르러서야 앨범 안에서 몇 없는 목소리가 등장해 『은서』의 종말을 알린다. 잠비나이는 그들의 말과는 반대로 폭주하는 악기의 연주와 그가 만드는 소리 위에서 끝을 맺지만, 청자는 그들의 말처럼 아무 말 없이, 속된 말로 "벙 찐 채"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은서』가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에, 모든 이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잠비나이의 등장은 2010년대뿐 아니라 한국의 대중음악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그들은 국악기를 사용한 새로운 음악에 있어서, 쉽게 어우러지지 않을 두 분야가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의 융합에서 찾아왔으며, 그 방식이 국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선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적인 방식이었음이 증명된다. 그리고 그 충격은 한국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다르게 발현된다. 국악기에 익숙지 않은 해외의 음악 팬들이 받았을 충격은 새로운 소리가 제공하는 신선함에서 발생하며, 국악기에 익숙한(실제 잠비나이가 사용한 악기가 아닐지언정 비슷한 양식의 악기와 그들이 만드는 소리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악기의 정체에 대한 놀라움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충격의 원인이 어떻든 간에, 잠비나이가 선사한 충격은 그 자체만으로 지난 10년간에 역사에 필히 남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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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키무키만만수, 『2012』, 비트볼뮤직, 2012.05

신나는 리듬을 만드는 타악기의 정체가 '구장구장’이라는 신생 악기라는 사실도, 아티스트명이 '무키’와 '만수’라는 듀오의 조합이라는 사실도 몹시 인상적이었지만, 역시나 그들의 음악이 주는 감상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멀리서나마 그들의 음악과 몇 없는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그들의 조합이나 악기의 외형보다는 그들의 소리가 끼치는 영향이 훨씬 거대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도, 공영방송의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에서도, 핸드폰으로 촬영된 야외무대의 공연 영상에서도 그들의 소리는 모든 걸 박차고 우리의 귀로 침투하는,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파급력은 소리의 괴상함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정형성, 그리고 서정성과 결합하여 더 큰 에너지를 띠는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들에게 매혹된 상태로 계속해서 『2012』를 들으며 알게 된 점은 정은실과 이민휘, 아니 무키와 만수가 만드는 괴성, 혹은 강렬한 소음들은 여전히 꽤나 거슬리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고통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이전에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그들의 노랫말에 위치했다. 그들은 숭례문 방화 사건을 유머와 냉소를 뒤섞어 풀어내거나 (「방화범」),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무키무키만만수의 스타일로 변주하고, 정말 알 수 없는 표현들을 읊어대며 청자를 파리로, 유럽으로, 심지어 우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그러면서도 엄청난 파장의 밈을 만들어낸 「안드로메다」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인 「2008년 석관동」을 연이어 배치함으로써 그 혼란을 가중시키는 영민한 방법을 택하기도 했으며, 애니어그램(「7번 유형」)과 머리의 크기(「머리 크기」)라는 독특한 주제를 필두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음악 역시 그러한 혼란의 형성에 동참하는 추세였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는 급진적인 혼돈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는 정형적인 리듬과 꽤나 중독적인 멜로디가 숨어있었고, 뒤늦게서야 그들의 음악이 단순 일회성인 유머의 소재로 그치지 않는다는 핵심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직전에 서술했듯 우리는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단순히 병맛 코드로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은 이전까지, 혹은 지금에서도 보기 드문 괴성과 소음으로 무장한 음반을 선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명료한 서정과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종전에 괴성으로 뒤덮여있던 트랙의 직후로 익숙한 정형성을 가진 포크음악이 등장하는 것도 앞선 문장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형성의 존재를 인지하고 난 이후에야 먼젓번에 나온 소음 역시도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문맥의 일부분임을 다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애니어그램의 "유형" 구분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것도, "삐뽀삐뽀뿡빵빵"이라는 괴상망측한 문장을 되뇌는 것도 그제야 무키와 만수가 그려내는 이야기의 일부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면으로 내세워 거듭하는 괴성이라는 주체가 대중음악에서 매번 기피됐던 형식임을 되짚어 보자면, 그러한 형식의 시도는 두 사람이 그렇게도 등한시되어온 자극적인 방식을 택해서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파하고자 하는 의지에 근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꼬리를 물게 된다.


『2012』는 분명 급진적이고 괴상하지만, 동시에 서정적이고 차분한 음악이다. 이는 이미 앞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한 어구일 테지만, 본작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수식어는 없을 것 같다. 그들이 공연한 무대가 집회 현장과 EBS였다는 사실마저도 이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듯싶다. 혹은 음악보다 현실에 더 집중하던 두 학생이 기획한 음악을 달파란이라는 거장이 프로듀싱했다거나, 그들이 말했듯 순수한 목적으로 구현한 정치적 활동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제는 그들이 음악을 하는 무키와 만수에서 정은실과 이민휘로 살아가고 있으며, 각자의 삶에 충실한 두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은 우리가 예상한 무키, 만수의 삶과는 전혀 달라 보인다. 허나 지금에 와서도 그들의 음악과, 공연은 여전히 충격을 주는 요소들로 남아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을 주제로, 혹은 이들의 행보를 중심으로 많은 담론의 장을 열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도 그들이 선사한 충격에 휩싸였던 순간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무키와 만수가 준 충격은 2010년대에 들어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가장 뚜렷한 충격의 여파를 남긴 순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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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둑, 『무너지기』, Self-Released, 2018.07

때때로 음악은 청자를 실제와 동떨어진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이는 비단 EDM이 공간을 클럽으로 변화시킨다거나, 매혹적인 재즈 선율이 청자를 재즈바에 앉혀놓는다는 표현과는 다르며, 어쩌면 우리의 경험을 초월하는 그 어딘가로 이동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어떠한 음악을 관찰함에 있어, 그 음악이 주는 감상의 본질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수식이 길었지만 이 모든 형용은 『무너지기』를 위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무너지기』는 나의 2010년대에 있어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나는 『무너지기』를 통해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정체 모를 공간에 존재하기도 했고, 그 공간에서 음악이라는 예술이 선사하는 장엄한 광경에 넋을 잃기도 했다. 이는 모두 다른 어떤 것의 간섭 없이 그저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드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극히 드물고 신비한 경험이었으며, 그 경험의 과정과 결말을 나누고 싶기에 본고를 써 내려갔다.


나는 『무너지기』를 감상함에 있어서 총 3번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처음으로 본작을 감상했을 당시의 순간이 있었고, 어느 정도의 번민을 정리한 후의 두 번째 감상이 있었으며, 결국 해탈의 순간에 다다라 다시금 작품을 재생했을 시기의 감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음반을 처음 감상할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 소리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무너지기』는 그 소리에 관하여 번번이 뜻밖의 순간을 만들었다. 작품의 시작인 「왜?」의 소리는 순식간에 청자를 소리들이 중첩되어 만드는 공간으로 이끌고, 이어지는 「쇠사슬」의 중심부에 이르러서는 청자가 그 공간에 완전히 잠식되게 만들었다. 「왜?」에서 만들고 「쇠사슬」에서 확장시키는 『무너지기』의 공간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그럼에도 정제되어 있으며, 여백이 있고, 혹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너지기』의 모든 소리는 능동적으로 공간을 헤엄치다가도 수동적으로 형식에 맞춰졌다. 그리고 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정적을 만들기도 하고 점차적으로 모습을 숨기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곡선과 투과광」에서는 이전까지 뒷 순번으로 밀려나 있던 목소리가 느닷없이 핵심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함께 무너지기」에서는 다시금 목소리가 그 자취를 감추듯이 돌변하여 다른 소리의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계속해서 모순되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무너지기』는 조지환이 말했듯 "무형식을 형식화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앞선 모든 모순적인 말들이 존재했던 순간처럼 『무너지기』에는 무형식이 형식이 되고, 형식이 무형식이 된다. 그렇기에 그러한 모순의 순간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무너지기』를 감상하는 내내 나는 소리들에 휩싸이거나, 그들에게서 도태되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감상에 이르러서야 더 많은 소리들을 보다 면밀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혼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새로 맞이할 감상을 더욱 명료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줄곧 귓가를 맴돌던 노이즈는 마스터링 과정에 사용된 카세트테이프 때문이었고, 앨범 전체에 등장하는 여성의 정체가 섬머 소울(Summer Soul)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는 거만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무너지기』는 예상을 매번 벗어났다. 가사를 읊으며 노래를 들어도, 자세를 바로잡고 재생 버튼을 눌러도 『무너지기』는 부단히 예상 못 할 찰나에 나의 예측을 깨버리며 허망함에 빠뜨렸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음악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의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맞이하는 세 번째 감상의 시기에서야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감상의 절정을 맞이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감상하는 『무너지기』는 나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시공간에서 순식간에 출현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다지 애쓰지 않으며, 이 소리가 여운을 만들든, 정적을 만들든 간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다시 한번 무너졌다. 이러한 무너짐의 반복 끝에, 나의 뇌리에 존재하던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 음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으로 획득하고자 했던 시도, 그리고 그 시도가 성공적 이리라는 희망을 일순간에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매 순간 경험했던 무너짐이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무너짐은 청자에게 새로운 방편을 제시할 수도 있고, 혹은 생각을 재정비하는 시간과 또 다른 효율적인 형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무너지기』의 말미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그 무너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자고로 인간은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희망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다른 희망을 꿈꾸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무너짐에 굴복하지 못한 채 허망함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생각을 내려놓은 채 본작을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무너지기』는 2010년대 내가 겪었던 음악적 경험에 있어 가장 무서운 순간과 가장 희망적인 순간을 함께 선물했던 작품이었다. 이는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감상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나와 같은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도 『무너지기』가 제공하는 압도적인 경험의 순간을 계속하여 되짚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또한 그렇기에, 나는 지난 10년간 나에게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선사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무너지기』를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작품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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