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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주 Mar 17. 2020

코로나 덕분에 먹게 된 음식

ep 06. 집밥

 올해로 32살이 되었고, 태어나 정확히 11,074일이 지났다. 한국인은 삼시 세 끼라고 했으니 내가 끼니때에 맞춰 먹은 식사들을 헤아리면 33,222끼를 먹었겠다. 가끔 세끼를 채우지 않았던 날도 있겠지만 세끼를 넘겨 먹은 날도 더러 있으니 그냥 그렇게 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수많은 끼니 중 어디서 무엇을 먹었고 내가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집밥]을 가장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음식의 이름을 들으면 같은 그림을 떠올린다. 피자를 들으면 누군가는 페퍼로니 피자를, 누군가는 고구마 피자를. 떡볶이를 들으면 누군가는 국물 떡볶이를 누군가는 짜장 떡볶이를 떠올릴 수는 있지만 모두가 떠올린 그 음식의 그 본질은 피자와 떡볶이다. 집밥은 어떤 메뉴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라서 이런 점에서는 집밥은 듣고 누구는 된장찌개를. 누구는 미역국을. 불고기를. 닭볶음탕을. 당최 어디서부터 수를 세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많은 음식들을 떠올린다. 다만 모두가 떠올린 그 음식의 본질은 같다.



 집밥의 이음동의어는 어머니다. 각자가 떠올린 집밥의 그림 속에는 (아버지가 서운해하실 수도 있지만)어머니가 있다. 법적으로 성인이고 사회의 시선으로 어른이 되어 독립을 했을 때 나의 집이 생겨 그 안에서 직접 지어먹었던 밥은 나의 그 집밥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한 밥이었다.


 나의 집밥을 떠올려보면 내 어머니는 미각과 후각을 활용해 음식을 차리시고, 차려진 밥상에서 미각보다는 청각과 시각을 곤두세우는 분이다. 내 숟가락이 향하는 곳과 젓가락이 향하는 곳의 빈도수를 체크하시고. 내가 맛을 보고 내뱉는 말에 귀 기울이시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상을 차리시는 분이다. 나의 집밥은 이렇게나 과학적(?)이다.


"맛있다"


라는 말을 꺼낸 메뉴가 그 상에 있었다면.


"또 이거야?"

"너가 맛있다며"


라는 상황이 오고 나서야 식탁에서 사라진다. 맛있는 걸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이 내 집밥의 장점이다. 그리고 나의 입맛에 맞춰진 맞춤 서비스다.(이건 모든 이의 집밥이 그러할 것 같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내 주변 그리고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 아주 좋지 않은 소식들로만 가득하다. 때문이라는 말이 이렇게 찰싹 들러붙는 덕분에 요즘 일어나는 나쁜 일들의 귀책사유를 돌리기에 아주 적합한 코로나 19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회사도 3주가 넘는 재택근무를 시행 중에 있다. 때문에 집에서의 활동 시간이 늘어났고. 때문에 가려던 여행들도 취소를 했고.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요즘 내 일주일에 집밥이 생겼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다. 평일에는 출근과 야근. 칼퇴하면 친구들과의 약속. 주말에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 이렇게 바쁘게 보낸 일주일에 집밥은 없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과 살고 있고, 덕분에 요즘은 아주 따끈하고 아주 맛있는 진짜 집밥을 먹고 있다.


  "카레, 닭볶음탕 뭐 먹을래?"


 내가 집밥을 먹는 날 어머니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근 1년을 가고 있다. 아직 내가 이 메뉴들에 싫증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조금의 여유가 더 생기신 날이라면 제육볶음, 고추장찌개를 포함한 4지선다의 질문이 된다. 아주 듣기만 해도 행복한 질문이고, 세상 신중한 선택을 위한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


 여자 친구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함께 일을 하는 날도 있다. 이 날들은 주로 배달이나 완전 조리 식품을 먹지 않고 우리가 직접 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 나는 요즘 유튜브로 요리를 배운다. 메뉴 이름만 검색해도 아주 다양한 레시피들이 나온다. 몇 가지를 시청하고 그 요리들의 장점들만 한데 모아 나의 음식을 만든다. 나도 너도 맛있다고 먹지만 나의 집밥과는 달랐다.


 집밥은 아이러니하게도 곁에서 멀어질수록 그리워진다. 중년의 주인공이 등장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가 생각나는 맛이네요..'라고 말하던 영화나 드라마 속 클리셰. 집밥이 곁에서 멀어진 그들의 이야기가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집밥은 영원하지 않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코로나 바이러스 속에서 모두 각자의 집밥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1) 나는 대체적으로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새로운 맛이 있다면 호기심이 생기고 그 맛에 도전하기 위해 달려드는 편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잘 먹는다는 기본 전제를 포함한다.


2)  내가 아주 좋아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어글리 딜리셔스>에서는 피자, 타코, 바비큐 등 다양한 음식들로 매 회 풍성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 메뉴들과 견주어 한 회를 꽉 채운 메뉴가 바로 집밥이다. 나는 이 3화 [못생겨도 집밥] 편을 단연 최고라고 꼽는다. 


3) 밥 다 차리셨다고 부르셔서 나가면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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