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5. 곱창전골(下)
(이전 글과 이어지는 글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앞선 글을 먼저 읽어보시면 보다 더 이해가 수월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곱창전골을 찾아 헤맨 지 무려 12개월이 지났다.. (1년이 지나고 쓰는 속편이라니.. 사실은 방황했다.)
사실 다른 이야기로 이야기를 돌아올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곱창전골과 함께 세트로 따라오던 참이슬 후레쉬는 이즈백(진로 is back)이 되었고, 추운 겨울을 지나 몇 개의 계절을 거쳐 다시 겨울이 되었다.
그 말은 다시 곱창전골의 계절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봄인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찬 바람이 불고, 스마트폰을 해도 크게 손이 시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례상 내 손이 주머니를 찾게 되는 이 계절 저녁의 곱창전골은 대저택에서 키우는 도베르만, 우리 회사의 KT 텔레캅, 2018 독일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의 조현우, 어린 시절 울음을 터트리면 찾게 되는 엄마와 같이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존재다.
사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곱창전골 세계에 혀를 들인 것은 소주의 맛을 제대로 알기 시작하면서부터였지만 알면 알 수록 이 세상에는 내가 생각한 저렴한 곱창전골이 아닌 다양한 곱창전골들이 많이 있었다. 1인분 7천 원짜리 돼지곱창전골부터 1인분 5만 5천 원짜리 소곱창전골까지.
여자 친구가 언젠가 길을 걷다 물은 적이 있다.
"오빠가 생각하는 성공은 뭐야?"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했던 대답이란
"나? 신정에서 곱창전골 먹는 거."
그게 무슨 성공이냐며 지금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한 소리 들었지만.
그냥.
그때만큼은 무의식 속 내 성공의 기준이 '곱창전골'이었나 보다.
수많은 식당들 중에서도 그래도 내가 애정 하는 곳을 꼽자면.
삼성동 해장국집의 곱창전골이 생각이 나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더해져 시청의 곱창전골을 좋아한다.
이곳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의 식당이다. 들어가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면 곱창전골이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곱창전골은 근처 직장인들의 점심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양구이와 로스구이 갈비살이 저녁의 주력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나는 저녁에도 곱창전골을 주문한다. 그래도 전혀 눈치 주는 이 없다. 그 정도로 이 식당에서는 곱창전골을 홀대하지 않는다.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터라 자주 즐기곤 하는데 봉*양, 우*옥에서는 평양냉면만 주문한 내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자격지심일까. 갈비나 불고기를 시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의 곱창전골은 다르다. 이 곳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잘 먹어야겠다는 마음 가짐만 있다면 충분하다. 주문하고, 먹고, 계산하고. 이 3 STEP이면 완벽하다. 행여나 넘치는 게 아닐까 뚜껑을 열어볼까? 저어볼까? 하는 노파심도 버리고 가야 한다. 최상의 상태로 조리가 되도록 보듬어 주시고, 심지어.. 나의 앞접시에 떠주신다. 그럼 먹으면 된다. 앞접시에 덜어주신 곱창전골이 바닥을 보여 더 먹어볼까? 국자를 들어볼까? 하는 노파심 역시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런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시고는 내가 3 STEP 외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또 덜어주신다. 그럼 역시 맛있게 먹으면 된다. 앞서 소개한 원주의 강릉집을 '순마카세'라 일컫는다면, 이곳은 '곱마카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국인의 대표 디저트. 볶음밥. 곱창전골을 마무리한 후 볶음밥이 먹고 싶은데 메뉴판에 없어 쭈뼛거리며 공깃밥을 시켜 직접 볶아보려다 혼이 났던 경험이 있다. 이 역시도 3 STEP을 명심하고 메뉴판에 있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주문하면 어느새 마지막 단계인 계산만 남아있게 된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먹으러 가야겠다. 곱창전골.
1) 사실 이번 겨울은 겨울이 아닌 것 같아 먹는 걸로 겨울을 체감하려 애쓰고 있다.
2) 신정에는 언제든 가볼 수 있지만 가지 않고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3) 나는 돼지는 돼지대로 존중하지만 곱창은 그래도 소가 옳다.
4) 사실 가장 아래는 아니고 그 아래에 소면과 추가 밥/사리가 더 있긴 하다.
5) 홍대에 곱창전골이라는 LP바도 좋아한다. 곱창전골은 다 좋다.
6) 시청의 곱창전골을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일하시는 분들의 노련함이 아닐까 싶다. 작년 봄, 근처에 미팅이 있던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해야 해서 대표님을 모시고 자신 있게 방문해 만족감을 안겨드렸고, 3 STEP의 마지막 계산 단계 중 사장님께서 말을 건네셨다.
"이 동네 분들은 아니신가 봐? 어디서 오셨어?"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다.
"아니 이 시간에 외투 입고 가방 메고 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고들 왔잖어"
무릎을 탁 쳤다. 아주 간단한 사실이면서 동시에 별 거 아닌데. 이 한마디에 난 이 식당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 곳의 손님이었다는 푸근함도 느껴졌다. 이 역시 '맛'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