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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영 Jan 12. 2021

고마웠어 아주 많이

나의 첫 타블렛이 작별을 하려는지 작동이 잘 안된다.

기계가 고장났다고 이렇게 슬픈 건 처음이다.

10년 넘게 그림을 붙들고 괴롭고 기쁠 때마다 묵묵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걸 지켜봐 준 존재

이 타블렛으로 디지털 드로잉에 입문하게 됐고 취직도 했고 프리랜서가 되고 돈도 벌었다.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처음 상자에서 꺼내 열어봤을 때처럼 깨끗하고 반듯하다. 

나에겐 기계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동안 너무 너무 고마웠고 고생 많았다.









퇴근하고 자기전까지도 계속 일 생각만 했었다.

그 습관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은 점점 멀게 했다.

그림을 그리는 나, 자연인의 나

둘 다 건강해야 이 일도 오래하고 행복할 수 있다.

조금씩 배운다. 사는 법.









강추위가 찾아와도 나가서 걷는다.

걸음이 좀 느리다고 생각은 했지만

 오늘은 엄청 어린 아이한테 추월당했다.

이 정도의 속도도 운동효과가 있는 걸까








어제 대학생 시절 찍어 놓은 영상을 봤다.

20대 초반의 나는 어린 강아지처럼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지금은 어느덧 2020년의 마지막 날.

그때보다 활기도 떨어지고 다크해졌지만

이 모습도 나쁘지 않다.

엊그제 엄마랑 농협에 잡곡을 사러 갔는데

이 봉지를 들었다 저봉지를 들고 보고 있었다. 

옆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오시더니

 10kg 늘보리를 번쩍 들고 카트에 툭 

뒤이어 여러 잡곡들을 카트에 툭툭 넣고 순식간에 계산대로 사라졌다.

할머니의 카트엔 아주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많은 것들을 단숨에 툭툭 담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멋있어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런 모습은 꼭 닮고 싶다.

내년에도 지금처럼만 살면 좋겠다.

 2020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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