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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Nov 05. 2024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저는 오늘 출근할겁니다

자비없는 온도가

잠을 깨우는데,

밀려있던 잠은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할 계획은 없고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의무만이

내 손을

허공으로 끌어

앉힌다






밀려오는 기억과

잠시 이별을 기약하고

이런 저런

아침 일과를

체크리스트에서

지우다보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한 여자가 어느 전봇대에 걸린

CCTV에 찍힐 예정인 방식으로






100년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임이

섬뜩한 감정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그렇다 한들

현재를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살아내는 것을

당장은 멈출 수 없음이




헛헛한 마음을

선사한다





그런 헛헛함은

가던 편의점에서

살 것도 없으면서

마이쮸 한 줄 사서

나오는 것으로

채우곤 한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디로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가

집에서 버리고 갈 짐을 정리할 것인가

부모님께 전화를 할 것인가

동생한테 내 동생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웠다고 문자를 보낼 것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만나서 내 태어난 이유가

충분했다는 급한 고백의 전화를

없는 번호로 할 것인가.














고민끝에.




그냥

일어나고 싶은대로 일어나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

포인트 적립도 하고

마트에 들려서 먹고싶은 것들

사서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사기 위한

관리자 로그인을 기다리고

횡단보도 안전히 건너

집에 와서는

그렇게 해먹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학생들에게 받았던 캔디나 편지를 보며

웃다가

유튜브에서 최애 영상을 보며

와인이 재우는 잠을 자겠지.










그런 것이다.




마지막 하루라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살던대로 사는 그 루틴,

살던대로 살던 그 고유한 나의

길,

개미가 각자의 길을 만들어내며

투명한 병의 겉면에

길을 남기듯





그 나만의 회로를

마지막으로 걸어보는 것으로

내 자존을

내가 있었다는 것을

혼자

기억하고

그렇게 밟아도 밟아도 아쉬운

길을 한번 더 밟아보면서

말하지 않아도 내 삶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







어쩌면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란 조건을

달지 않아도

충분히 처음인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인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오늘 당신을 만나야 하면

가까이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럴 수 없기에

기억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도

사랑을 이루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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