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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Oct 07. 2019

여성용 축구화는 어디에 있나요?

모름지기 스포츠는 장비빨이랬다.


    매주 일요일, 나는 남친의 조기축구회에 따라가기로 했다. 나도 공놀이가 하고 싶다. 그 단순한 욕구가 꽤나 강렬했다. 일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평일 저녁 집 근처 운동장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공으로 좀 깔짝거려봤다. 오빠는 간단한 패스를 알려주었는데, 공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벌써 짜증이 올라왔다. 잘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금방 하기 싫다는 생각을 불러왔다. 



축구화가 없어서 잘 안되는 것 같아. 



 축구화가 기초체력을 증진시켜주거나 없던 운동 신경을 심어주진 않을 거란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치만 벌써 하기 싫어지긴 싫었다. 결국 내 운동화는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아무렴 어때. 모름지기 스포츠는 장비빨이랬다.



    우리는 시흥 프리미엄 아울렛을 찾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조기축구를 즐긴다는 로망(?) 때문인지 오빠는 적극적으로 쇼핑에 나섰다. 축구화 말고도 내게 필요한 아이템을 알려주었다. 


- 스포츠 브라

- 스포츠 반바지

- 스포츠 타이즈

- 축구화


 나이키 매장으로 들어가 여성 코너를 찾았다. 다른 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축구화만 빼고. 전-부 아동용/남성용 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성 코너에서 축구화를 찾을 순 없었다. 가장 기대했던 아이템이었던 만큼 실망감도 컸다. 



신기만 하면 블랙팬서 마냥 가볍게 뛸 수 있을 것 같은 갠지 넘치는, 미래기술 느낌나는 이런 아이도, 

신기만 하면 발에 부스터 달려서 드리블 50미터 주파는 식은죽 먹기일 듯 한 이런 아이도,

신기만 하면 클라스는 이런거다 하고 보여줄 수 있을것 같은 클래식한 이런 아이도 있었다.



갖고 싶다.. 너란 아이..




 

    축구화가 이렇게 이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이쁜 아이들을 눈 앞에 두고 내가 못살 줄은 더더욱 몰랐다. 물론! 축구를 해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기 때문에 비싸고 좋은 걸 살 필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색 저런색 다 있는 남성 축구화들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너무 좁, 


아니 애초에 선택권 자체가 없는 건 너무 하잖아.


심지어 여성도 못할게 없다며 광고하던 나이키였는데. 일종의 배신감도 들었다.


 just do it 이 축구화 없이 그냥 하라는 말이었니..?



    결국 나는 아동용 중에서도 240짜리가 남아있는 제품 중에서 고를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선택권은 2~3개 정도로 더욱 줄어들었다. 아동용은 성인용에 비해 가짓수도 적을 뿐더러, 같은 라인이더라도 소재나 내구도, 디자인의 디테일이 묘하게 떨어졌다. 솔직히 좀 유아틱해보여서 간지도 안났다.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내가 고른(혹은 골라야만 했던) 축구화는 2만원이 채 안했고 내가 본 예쁜 축구화들은 20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디자인은 포기했고, 그냥 발에 맞는 걸로 고를 수 밖에. 추가로 구매한 축구양말 역시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프리사이즈여서 그랬나, 양말 속 내 발도 프리했다.






   오빠랑 쇼핑을 다니면 오빠는 여성 코너에서, 나는 남성 코너에서 “이거 귀엽다”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에 마음에 들어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던 적은 많지 않다. 특히 신발 쇼핑은 사이즈의 제약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아무리 오버핏(overfit)이 트렌드라지만, 신발은 오버핏으로 신을 수 없다.


 쇼핑 때마다 번번히 사이즈로 좌절과 낙담을 경험하다보니 소소한 소망이 생겼다. 제품을 성별에 따라 나누지 않고, 대신 사이즈를 더 다양하게 내주는 것. 여자든 남자든 원하는 디자인을 사이즈 걱정 없이 고를 수 있도록, 그래서 더욱 만족도 높은 쇼핑이 되도록. Just choose it!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 내 축구화는 결국, 반년 정도 신고 버렸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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