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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Dec 10. 2019

조기축구회 코치님의 페미니즘


    코치님이 내게 “이번 경기 들어가서 뛰세요” 라고 말한 건 남친 따라 간 조기축구회에 내 축구화를 들고가기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비어있는 운동장에서 패스나 슛 때리는 연습 따위만 했을 뿐이었기에, 당연히 농담이겠거니 했다.


에이, 아니에요. 다음에 더 연습하면 할게요.


드넓은 운동장에서 혼자 연습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말 걸어주시나 보다, 생각하며 나는 웃으며 상냥히 대답했다. 하지만 코치님은 정색했다.


다음은 무슨 다음? 얼른 가서 몸 푸세요. 오른쪽 수비 보시고.


응? 단계라곤 싸그리 무시한 진도에 얼이 빠졌다. 하지만 이미 다른 분들은 운동장에 가 계셨다. 직전 경기를 뛰고 오신 다른 형님들은 빨리 내려가라며 재촉했다. 떠밀리듯 뛰어갔다.


머릿속엔,  


아니 코치님, 저 아직 패스 주고받는 거 배우는 중인데요… 갑자기 실전에서 뛰라니요? 제가 뛰면 다른 분들한테 민폐 끼칠 텐데.. 아직 여기 낄 짬이 아닌데… 전 아직 준비가 안됐구요 아직 엄청 못하구요, 공 다 뺏겨서 나 때문에 대량 실점할 것 같고, 막 엄청 무서워요


등 미처 쏟아내지 못했던 말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어버버 타고 있는 새 휘슬이 불렸고, 그렇게 정신 없는 채로 내 첫 데뷔 게임(?)을 치루게 되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내게 공이 오는 일은 없었다. 아, 이 정도면 할만 하다 싶었다. 그 때부턴 긴장하기 보단, 관객이 아닌 플레이어가 된 내 자신이 재밌었고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상대팀 공격수가 우리쪽으로 올 때면 숨을 헐떡이면서도 미친듯이 쫓아갔다. 나름 오프사이드 라인도 맞추며 뛰었다.


그러다 한 번은 상대팀이 코너킥 기회를 얻었다. 상대는 내가 마크한 선수 쪽으로 공을 올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일부러 그랬을 것이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걸 알겠다. 그래야 골을 넣기 쉬웠을 테니. 하지만 그 때의 난 내 쪽으로만 오지마라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던 멍청이였다.) 골문 앞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육중한 상대 선수의 몸을 밀치며 겨우 공을 밖으로 쳐냈다. 고비를 넘긴 뒤 고개를 드니 상대 선수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 잘못했나? 싶은 마음에 주위 눈치를 보니 우리팀은 잘했다고 따봉을 들어 보여주었다.




    아쉽지만 내 활약은 이게 다였다. 2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내 일어난 일이었지만, 조기축구회에서의 내 인생 첫 게임은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도 계속 오랜시간 곱씹게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게 있었다. 코치님이 날 더러 경기에 뛰라고 한 것. 온통 남자들 뿐인 이 경기에서 선수출신도 아닌 나를 깍두기로 삼지 않고 온전히 한 자리를 줄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예상과는 달랐던 것이다. 나조차도 내가 뛸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여자니까 봐주고, 안 뛰고, 이런게 없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코치님은 누가봐도 정말 평범한, 축구 좋아하는 40대 아저씨일 뿐이다. 그런 그의 성 평등 의식은 내가 생각해왔던 아저씨들과는 달랐다.


 한편으로는 날 노려보던 상대팀 선수의 표정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 때 그 분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날 노려봐준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축구회에 참여하면서 놀랐던 것이, 이 분들이 취미니까 웃으며 좋게 좋게 공 좀 차는게 아니라, 진짜 치열하게 경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의 분위기는 꽤나 살벌하다. 상대팀과의 신경전도 당연히 있다. 그러다보니 게임 중에 서로 노려보거나 견제하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인데, 나도 그걸 당한 것이다! 이게 기분이 좋다는 게 어쩌면 좀 변태같아 보일 순 있지만, 내 말은 나도 정말 한 명의 ‘상대’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만약 서로 몸을 부딪혔을 때, 상대 선수가 “괜찮으세요? 다치지 않게 쉬엄쉬엄 하세요 ^^”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순간엔 매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나를 선수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깍두기로, 그러니까 이 경기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 날 그는 그런 말을 일절하지 않았다. 이 날의 경험은 ‘아재’들에 대한 나의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한국의 아저씨들은 억울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조기축구회에 들어와서 내 인생 최대로 다양한 아저씨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눴지만, ’나 때는 말이야~’ 는 했을지언정 ‘여자가 말이야~’ 를 뱉은 사람은 없었다. 물론 모든 아저씨들이 성차별을 하지않는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아재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훨씬 차별-less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이들을 너무 미운 눈초리로만 보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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