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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Dec 13. 2019

조기축구회의 꽃이 회식인 이유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기축구회 회식은 좋아한다. 조기축구회 회식에는 다른 회식과 다른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이다.





 조기축구회 회식엔 음식 외에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있다. 바로 그날 경기. 오늘 누가 패스를 어떻게 찔러 줬고, 누가 패스를 안 줬고, 어떻게 골키퍼를 제쳤고, 누가 뻘짓하다 공을 뺏겼고, 얼마나 기가 막히게 골을 넣었고, 골문 앞에서 누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고, 심판이 못했고 잘했고 등. 식당에 자리 잡고 앉은 그 순간부터 오늘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턴 모두가 전력분석관이다.


 경기에 임했던 모든 이들이 한 마디씩 거들다 보면 오늘의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를 되짚어 보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얘기 중 꼭 나에 대한 이야기도 튀어나온다. 거기엔 칭찬도 있고, 조언도 있다. 이 때가 정말 이 회식의 핵심인데, '아직 싱싱한 기억 + 형님들의 피드백' 조합이 주는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 경기에서 스로인을 잘했다고 칭찬받았다고 해보자. 어떤 분이 "스로인할 때 실수하는 사람 많은데 완전 정석으로 해서 놀랬네~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 쯤으로 지나가듯 언급하셨을 것이다. 칭찬에 들떠버린 내 머릿속에선 오늘 내가 스로인한 순간의 기억만 도려내 클립 영상처럼 저장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요.' 란 그의 말을 이 영상의 썸네일 제목으로 넣는다. 앞으로 스로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당황하지 않고 이 기억을 되살리면 되는 것이다.


 한 편, 너무 쉽게 상대에게 길을 내어준 것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고 해보자. "가만히 있다가 상대가 올 때 뛰어가면 이미 늦고 너무 힘들어. 살살 뛰면서 움직이고 있으면 먼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어서 쉽게 안 제껴지지."  이런 말을 들으면, 오늘 경기 중 상대가 나를 제끼고 지나갔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럼 이 생생한 기억에 오늘 받은 조언대로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해 합성을 해본다. 싸울 땐 떠올리지 못했던 말들이 뒤늦게 생각이 나면서 '으으, 이 땐 이렇게 퍼부어줄걸..!' 하며 상상해본 적 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똑같은 싸움은 일어나지 않지만, 축구에선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기축구라면? 바로 다음주에 바로 써볼 수 있다.




 방금 치른 생생한 경기들을 곱씹는 자리.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 이게 조기축구회 회식이 가지는 의마다. 개인적으로는 백날 천날 패스 주고받는 연습 해봤자, 회식자리에서 얻는 훈련 효과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은 피드백이란 모양을 하고선 속으론 비난의 모습을 가진 경우도 있다. 이 땐 누구 한 명 삐지고, 서로 '쟤 왜저래' 하는 마음으로 회식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그 열망 하나로, 다음 주에 또 나와서 같이 살을 부대끼며, 3~4시간이 넘는 시간을 같이 공을 찬다. 그리고 또 회식서 축구 얘기로만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렇게 회식은 조기축구회의 꽃이 된다.


<뭉쳐야 찬다> 어쩌다FC의 귀여운 회식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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