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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Sep 15. 2020

식물인간

-과습에 유의하세요-


    식물의 뿌리는 호흡한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초보 식물 집사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과습'이다. 과습은 흙에 물이 가득 차 뿌리가 숨을 쉴 공간이 없는 상태인데, 실내 식물들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이 과습이다. 쉽게 말하자면 식물의 익사다. 과습이 일어나는 이유는 뻔하다. 환경이 안되는데, 욕심은 한 가득인 거다. 그러니까 식물이 잘 자라려면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햇빛도 적당해야 하는데, 저가 원하는 곳에 둔다고 그런 환경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그러면서도 빨리 자라나는 모습이 보고 싶어 매일 같이 물을 들이붓는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그치만 괜찮다. 식물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까.


    '인간'이란 종에게도 뿌리가 있다. 인간의 뿌리는 인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지만, 뿌리이니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식물의 뿌리가 흙 속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식물들은 아마 땅 속이 가장 안전한 곳인 줄 알았나 보다. 그들보다 조금 더 고등한 생물인 인간은 땅 밑도 언제든 포식자들에게 들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중요한 기능을 흙에다 심어놓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그들은 포식자들에게 들키지 않을 다른 곳을 찾아내야만 했다. 인간을 위협하는 포식자는 한 가지 종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뿌리를 보관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인간의 뿌리는 비로소 호흡하는데, 이때의 호흡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입의 호흡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뿌리는 산소 대신 다른 것을 들이마시며 또한 무엇을 들이마시느냐에 따라 내뱉는 것도 달라진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일 수도, 소리일 수도, 느낌일 수도 있다. 이런 걸 들이마신 뒤 내뱉는 것은 기억일 수도, 경험일 수도, 말일 수도 있다. 인간의 뿌리는 이런 것들의 일체를 호흡한다.


    인간의 뿌리 역시 과습에 걸릴 수 있다. 원인은 식물의 경우와 같다. 척박한 현실에 던져놓고 자꾸만 성장하라고 압박을 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맞닿을수록 인간 뿌리가 숨 쉴 수 있는 틈은 점점 더 사라진다. 조그만 틈도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아지면 여지없이 과습이 온다. 가끔 갑작스럽게 밀도가 높아져 넘치는 것들이 눈에서 물의 형태로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과습과 조금 다르다. 과습은 흘려보내야 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게 조금씩, 차곡차곡 쌓이면서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과습을 알아차리는 데엔 시간이 꽤 걸린다. 무서운 놈이다. 이제껏 대부분의 인간은 노지에서 자라서, 과습에 유의할 필요가 없었으나 요즘 들어 과습에 걸린 인간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니까 과습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20대 인간들 사이에서 증상이 도드라졌다. 이 때서야 겨우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의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다. 한창 자라야 할 때에 과습이 오면 뿌리가 썩어 앞으로 열매를 맺을 힘이 부족해진다. 예전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달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열매를 맺기도 전에 인생을 마감할 확률이 매우 높다. 과습이 온 식물을 살려보려 애써본 경험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물 부족, 햇빛 부족보다 훨씬 치명적인 게 바로 과습이다.


    아무래도 인간을 화분에 담기 시작하면서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은 화분이 아니라 인간용 그릇이 따로 있는데, 그 형태를 말로써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화분이라 표현해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편이 이해가 더 빠를 테니까. 뭐, 각설하고.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인간용 화분은 예쁘고 멋있게 키우고 싶은 욕망을 빚어 만든 용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종류에 따라 사이즈나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형태는 대개 비슷하다. 노지에서 자란 인간들은 삐뚤빼뚤하니 볼품은 없어도 튼튼한데 비해, 화분에 심긴 것들은 여차하면 병치레를 한다. 그래서 인간들을 화분에서도 잘 키우려면 비싸고 좋은 화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화분들은 많이 없어서 한참 전에 예약하거나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가끔 이런 노력 없이 순전히 운으로 이런 화분을 손에 넣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로또 맞았다'라고 한다). 좋은 화분에다 심는다고 다가 아니다. 10대, 20대, 30대, 40대... 때마다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이게 귀찮다고 아기 때부터 큰 화분에 담아놓았다간 후회하기 십상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화분에 놓이면 뿌리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처음엔 부모 정도 사이즈의 화분이 딱 적당하다. 또 환경이 안 맞으면 식물처럼 자살할 수도 있으니 이 점도 유의해야 한다. 아, 식물이 자살하는 줄 몰랐다고? 식물들도 간혹 자기 사는 곳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 싶으면 빨리 꽃을 피우고 죽어버린다.


 한창 분갈이하던 중 재미있는 소식을 하나 들었다. 요즘 들어 인간들이 과습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집에다 반려식물들을 많이 들이고 있는데, 잘 돌보지를 못해 과습으로 죽는 식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풉. 그 뉴스를 듣고는 웃음이 터졌다. 과습으로 죽어가는 것들이 또 다른 생물을 과습으로 죽이고 있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래도 뭐,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집 반려 인간들이 좀 더 튼튼해질 수만 있다면야. 우리 집 반려 인간들도 식물 키워가며 열심히 살 거 생각하니 귀엽기 짝이 없다. 한편으론 대견한 마음도 든다.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음, 갑자기 방금 웃은 게 좀 미안해졌다. 비웃은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걸 보고 웃는 건 좀 부적절한 데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치면 대견하단 표현도 영 아니다. 숭고함. 아니면 생명의 위대함?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의 감흥까지는 또 아니다.

 '응원한다.'

이게 제일 적절하다. 그래, 미숙할지언정 식물 기르기를 멈추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든 과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눈 앞에는 과습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화분 하나가 있었다. 거기에다 대고 작게 힘내,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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