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 Aug 27. 201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국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바스콘셀루스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브라질 문학 중 하나이다. 1968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한국에서는 78년 처음 번역, 출간되었다. 발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80년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현재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한국 내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내에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저자 바스콘셀루스가 활동하던 1960년대 말의 브라질은 1964년 군부 쿠데타와 제 5차 헌법 개정 후 정부의 억압과 검열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던 사회였다. 이와 같은 억압을 피해 많은 기존 성인 문학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아동 문학을 통해 저항 의식을 표출하였다.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역시 표면적으로는 아동문학의 형태를 띠면서 부모의 부재, 가난, 아동노동, 폭력, 죽음 등과 같은 현실세계의 어두운 면들을 다룬다. 출판 당시의 이러한 시대 배경, 작품 속 배경은 한국의 7,80년대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저자 José Mauro de Vasconcelos


1. 노동 문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제제의 아버지는 실직 상태였으며, 어머니는 6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왔고 누나들은 학교 대신 공장에 다녀야 했다. 이러한 설정은 당시 브라질의 노동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70년대 한국의 노동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 전태일이 1970년에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자살할 당시 박정희에 보낸 편지 중 일부를 보면 "...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이며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입니다..." 라고 언급한다.


2. 억압과 검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바스콘셀루스는 억압과 검열의 현실을 문학적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일례로, 제제는 실업자가 된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배운 선정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아빠는 제제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정부가 검열을 통해 불온, 저속하다고 판단되는 곡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곡의 판매, 공연을 금지하였으며 금지곡을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일개 대중가요 가사 때문에 아들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일삼는 제제 아버지의 모습은 국민과의 소통 대신 가혹한 검열과 탄압으로 일관했던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1979년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제일 처음 번역, 출간한 출판사인 광민사는 노동자 의식화 교재를 낸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에 의해 81년 폐사되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후에 1982년 최초 설립자였던 이태복 씨의 동생 이건복 씨가 광민사를 인수해 동녘을 세웠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재출간하였다. 그 후, 이 책은 당시 군부의 탄압과 노동착취 등에 대해 항쟁하던 한국의 대학 운동권에 의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 이 대학생들이 교단에 서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선생님들의 추천도서’ 목록에 자주 오르게 됐다. 어린 제제가 주인공인 아동문학이라 쉽고 간결한 어휘들로 쓰여 어린 학생들에게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브라질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문학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후 86년 종로서적 집계 베스트셀러 7위, 87년 최근에 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여자 중, 고교생 1위, 88년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9위 등 인기를 얻으며 교보문고 집계 80년대 베스트 10에서 소설 부문 2위에 올랐다. 출간 후 약 20년이 지난 후인 2003년에도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50위 중 23위에 올랐으며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리거나 청소년 추천도서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까지도 만화, 영화, 연극, 음악 등으로 한국 내에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2012년에 개봉한 브라질 영화 Meu pé de laranja lima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한국에서는 2014년 개봉.


    이렇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80년대 초 각박한 시기를 문학적으로 수용하는 한 수단으로 읽혀왔다. 이 책이 걸어온 길과 그 입지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단순히 인기 있는 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이 글은 JOSÉ CARVALHO VANZELLI & JI HYUN PARK, 2017, "A Situação Atual das Literaturas de Língua Portuguesa na Coreia do Sul", Estudos Brasileiros na Àsia, Editora UFV 에서 일부 발췌, 번역, 편집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싸들만 살아남는 나라, 브라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