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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Apr 04. 2019

인싸들만 살아남는 나라, 브라질

브라질 사람들은 친절하다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브라질 친구, 연인을 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브라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이런 얘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브라질을 다녀온 선배들한테 유학 생활 어땠냐고 물어보면 매번 듣는 얘기가 그거였다. 브라질 사람들 다 친절하고 성격 좋아서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길을 잘 알려주고 뭐 그런 정도가 아니다. 5분 전에 처음 알게 된 사람이지만 당일 본인 생일 파티에 날 불러준다. 친구의 집에 처음 방문했더니 그 가족들이 자고 가라고 한다. 옷도, 방도, 음식도 다 내준다. 집에 보내주질 않아서 3박 4일을 머무른 적도 있다. 브라질에 다녀와 본 사람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그들 특유의 친화력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언어에서 드러나는 인싸력

그들의 독보적 친화력은 그들의 언어인 포르투갈어에도 녹아있다.  바로 -inho [잉뉴] 이다. 잉뉴가 뭔데? 할 텐데, 축구 선수 호나우징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나우징뉴의 원래 이름은 Ronaldo, 즉 호나우두다. (유럽식 포어로는 호날두) 이 이름 뒤에 -inho를 붙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Ronaldinho 호나우징뉴 인 것이다. 이렇게 어떤 단어 뒤에 inho를 붙이는 것을 '축소사'라고 한다. 보통 사이즈를 줄여 작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다.


Ex) café 커피 [까페-] -> cafezinho 에스프레소 [까페징-뉴]

favor 부탁 [파보-ㅎ] -> favorzinho 작은 부탁 [파보징-뉴]

cerveja 맥주 [쎄르베-쟈] -> cervejinha 가벼운 맥주 한잔 [쎄르베징-냐]


호나우두가 호나우징뉴가 된 것은 호나우두를 작게, 그러니까 귀엽게 부르는 것이다. 페르난지뉴, 파울리뉴 같은 브라질 축구선수들 이름 모두 마찬가지이다. 잉뉴를 붙여 친근감과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유독 이 축소사를 정-말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남이 아니다'를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 불한당 건배사로 등장한 "우리가 남이가"


브라질의 정(情), Cordialidade 

정말 놀랍게도, 지구 반대편 나라인 브라질에도 '정'이란 개념이 있다. (누군가 정은 절대 번역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정서라고 했다지만..) 포르투갈어로는 Cordialidade [꼴지알리다지] 라고 한다. 이 이름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Sérgio Buarque de Holanda [쎄르지우 부아르끼 지 올란다]가 1936년 그의 저서 Raízes do Brasil [하이-지스 두 브라지우, 브라질의 뿌리]에서 사용한 Homem Cordial [오멩 꼴지아우] 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Homem은 '남자, 사람'을 뜻하는 포르투갈어고, Cordial는 영어 단어 cordial(다정한)과 같다. 즉 Homem Cordial는 "정이 많은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여기서 Cordial에 -dade를 붙여 명사화 해 만들어진 것이 Cordialidade인 것이다. (영어로 -ity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Sérgio Buarque는 이런 Cordialidade가 브라질 국민성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한국인들도 정이 있는 민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듯, 브라질 사람들 역시 이 얘기에 자랑스러워 했다. 다른 역사학자, 사회학자들도 이런 브라질 사람들의 국민성이 얼마나 긍정적인지에 대해 열심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국민 가수 Chico Buarque의 아버지이기도 한 Sérgio Buarque de Holanda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그의 저서 Raízes do Brasil

칭찬 아닌데?

그러자 Sérgio Buarque가 다시 한번 등판, 충격적인 이야길 한다. 본인이 주창한 Homem Cordial는 절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Cordial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단어가 라틴어 어원 Cor(심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뇌, 즉 이성과 대조되어 이성과 체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을 꼬집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재밌는 것은 한국의 정情에도 심장을 뜻하는 '마음 심'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나만 재밌나?


팩트폭력에도 불구하고...

Sérgio Buarque가 본인의 의도를 알리고 브라질 국민성에 대해 팩트폭력을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건 어딜가나 똑같은가 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cordialidade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도 많다. 이미 1930년대에 제기된 문제는 그 후로도 쭉 이어졌다. 질서와 체계보단 감정과 친목이 우선시 되었다. 그 결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없어졌다. 가장 사적인 단체인 '가족'과 가장 공적인 단체인 '정부'가 거의 동일시 되는 수준일 때도 있었다. 시, 도청 공무원들이 전부 일가 친척들로 채워지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족같은 회사, 가족같은 정부였다.


"가족 족보인가요?"                     "아뇨, 기관 조직도예요!"

 

모든 것은 '제이칭뉴'를 통한다

친목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다 보니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 일이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훨씬 빠르게 처리되는 일이 늘어났다. 이를 지칭하는 말이 바로 "Jeitinho [제이칭뉴]"다. 브라질과 사업적으로 연관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 단어는, 'jeito [줴이뚜]' 라는 단어에 축소사 -inho [잉뉴] 가 붙어 만들어졌다. 여기서 jeito는 '방법'이란 뜻으로, "어떻게 좀 방법이 없을까?" 의 방법을 의미한다. 여기에, 축소사가 덧붙여짐으로써 일반적인 혹은 공식적인 방법보다 "작은" 방법, 즉 편법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편법이라고 해서 엄청 나쁘고 부정적인 편법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요령", "융통성" 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교환학생 시절 어떤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잘못 체크하여 온라인 접수 기간을 넘어버렸다. 이번 시험은 못보는 건가..했는데 브라질 친구가 다 방법이 있다며 내 노트북으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접수를 못했다. 다른 방법이 없겠냐' 그랬더니 아주 친절하게 그럼 내일까지 메일로 접수 신청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 담당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그런것도 아니었다. 원칙대로 하면 안되는 건데 뭔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부탁을 하니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땐 브라질 사람들 참 친절하다! 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부 주관 시험치고 너무 쉽게 룰을 어긴 것이었다.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이런 상황이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친절과 부정(不正)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부정부패 없는 나라를 원하시나요? 먼저 정직해지세요.


브라질도 노력중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개선되지 못한 Cordialidade는 브라질의 끊어지지 않는 부정부패의 뼈대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비리 스캔들이 그 방증이다. 이렇게 잘못 세워진 뼈대 때문에 브라질이 지닌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리에 대한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고(혹은 이뤄지도록 노력중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문제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예전을 생각하면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브라질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써 브라질이 한 발짝 더 내딛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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