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지만, 한국과는 아직 인연이 많지 않은, 심지어 어디서 쓰는지도 잘 모르는 언어 "포르투갈어". 한국인에겐 이토록 생경한 언어이다. 그래서인지 "포르투갈어를 공부합니다." 라고 했을 때 왜 포르투갈어를 배우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다. 이번 글은 지난 6년간 포어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느낀 포르투갈어의 매력을 정리한 것이다.
솔직히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외국어와 연이 깊었다. 영어 강사셨던 어머니 덕에 어렸을 때 영어를 접했고, 다른 과목보단 비교적 수월하게 공부했고, 외고를 다니면서 외국어를 더욱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결국 대학도 외대를 다니게 됐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외국어, 특히 영어에 할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가서 '영어 잘해요' 란 말을 못한다. 아니, 영어 쓰는 것이 두렵다. 왜?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누군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쉽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얼마나 배웠고 연습했는지와 상관없이, 남 앞에서 영어를 꺼낸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데 포르투갈어는? 내가 틀리게 말해도 알아차릴 사람이 없을 뿐더러 애초에 할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기본적인 인사말만 해도 신기하다며 칭찬 일색이다. 그러다 보니 틀릴 걱정, 부끄러울 걱정이 없었다. 틀려도 된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주변의 우러러보는(?) 시선까지, 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 주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나만 알고 있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특히 20대땐 더욱. 처음 배워보고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은 나이이다. 모든 게 처음이니 스스로가 아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잉여인간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런 순간들마다 포르투갈어는 자신감의 근거가 되어준다. 틀려도 괜찮다고 하는 회복력, 나 또한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당당함. 이런 자신감은 비교, 경쟁, 승부에 약한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포르투갈어는 라틴어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로망스어 중 하나이다. 그래서 포르투갈어를 어느 정도 공부하고 이해하면 유럽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우선 어원을 추측하기 쉬워져 단어의 뜻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단어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불어 등 다른 로망스군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문화 역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동사 Estar와 Ser가 있다. 포어 공부 시 가장 처음으로 배우게 되는 이 단어들은 둘 다 한국어로는 "~이다"에 해당하는 동사이지만, 포르투갈어에서는 "~이다" 의 종류를 두 가지로 분명히 구분하여 쓴다. Estar는 일시적인 상태일 때, Ser는 영구적인 속성을 나타낼 때 쓴다.
ex) 나는 배고프다 -> (estar) / 나는 사람이다 -> (Ser)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존재에 대한 유럽인들의 오래된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다. 플라톤은 세계를 본질, 원형, 보편, 불변 등으로 대변되는'이데아 세계' 와 감각, 현상, 느낌 등으로 대변되는 '현실 세계' 로 구분하였다. 이런 플라톤 사상 이래로 '존재'에 대한 두 가지 방식으로의 인식이 자리 잡았고, 이것이 언어에도 반영된 것이다.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보여주는 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사실 대부분 학창시절 윤리와 사상 시간에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구나" 혹은 "그래서 어쩌라고"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현실 세계와 동 떨어진, 나와 아~무 상관없는 내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Estar / Ser 동사를 구별해 사용하다보면 이 사람들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라는 경험적 깨달음과 더불어 한국어적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방식의 세계관을 얻게 된다. 이렇듯 포르투갈어를 공부하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포르투갈어의 또 다른 매력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