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김대리의 첫 번째 거절
나는 사업부 경영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상황으로 P/L과 B/S, 비용계정, SAP의 세계로 진입했다.
처음 듣는 용어와 논리 사이에서 헤매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졌다.
'아 네, 이번 달 A제품 매출이 빠져서 영업이익이 계획대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우리 파트는 4명이고, 나는 밑에서 3번째 포지션이었다.
어느 날 은밀(?)한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고, 파트장과 막내가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졸지에 나는 파트장(?)이 되었고, 우리는 50%의 인원 감소를 당하게 되었다.
역시나 인원은 줄었지만 일은 줄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기존대비 2배의 일을 쳐내야 했다.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점을 합의하고, 진짜 필요한 일 중심으로 하루하루 허덕이며 보냈다.
2인체제에 익숙해질 무렵,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김대리, 이번에 사업부 경영 점검을 하는데 네가 한번 해보자..'
'팀장님, 그거까지 하려면 여기 일을 좀 빼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어,, 그건 1~2달 정도만 할 거니까 그때까지 여기 일은 빼줄게'
경영진단은 전담 조직과 사업부 인원이 TF를 구성하여 진행했다.
초기 방향성을 설정하고, 점검포인트를 공유하는 등 여러 차례 미팅과 협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기존 업무를 혼자 맡게 된 동료는 너무나 버거워했고,
나름 파트장(?)인 나의 검토를 기다렸다.
(우리 업무는 내가 A를 해야 그가 B를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내가 B를 리더에게 보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퇴근시간을 반납하고 둘 다 열심히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주 정도 하다 보니 하나둘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아.... 어쩌지..'
저쪽은 왜 여기에 매진하지 않냐고 질책을 하고, 여기도 왜 회신이 지체되냐고 공격받기 시작했다.
'하... 둘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지..? 아, 업무 빼준다더니 결국 하나도 안 빼줬네'
몇 일간의 고민을 끝내고 오전 9시 팀장님께 말했다.
'팀장님, 이 업무는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못한다고? 그래'
팀장님은 간결한 대답 이후, 진단 조직과 담당자 변경을 논의하고, 박 과장님에게 업무 이관을 지시했다.
'난 기회를 준 건데,, 네가 날린 거다..'
'아...... 내가 기회를 날렸구나....'
라는 생각이 온 마음을 뒤덮었다.
'나는 이제... 망한 건가...'
'무능력한 사람으로 찍혔나...'
이틀정도는 이런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고,
내가 일을 못한다고 스스로 인증한 것에 우울감이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고 나니
내가 한 선택은 너무나도 잘한 것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주변에서도 잘 말했다고 해주기도 했다.)
나의 능력과 역량을 벗어난 일까지 하려고 한 것은 과욕이고,
과욕을 부리다가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주변 동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사에 입사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그건 못하겠습니다.'
를 해내었고, 나의 이후 회사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못할 것 같은 건, 못한다고 말을 하고, 도움을 구해야 된다.
그러면, 동료들은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결국, 내가 걱정한 '무능력한 김대리'는 없었다.
물론 모든 일에 대해서 '안된다', '못한다'는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가끔의 '거절'은 오히려 업무적 효율성이 더 증가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거절'은 늘 어렵다.
불편하고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거절'을 해내었을 때, 나의 마음은 더 평온해질 것이다.
지금 우리도 거절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