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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pr 12. 2024

증오와 혐오


미움의 감정이란 '비교'와 '차이'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비교와 차이란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살지 않고 서로 모여 살면서 생기는 인식이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것은 같은 언어, 같은 모양새, 같은 장소에 대한 동질감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소속감으로 연결되고, 외부에 대한 소속감은 경계를 생성한다

경계란 배타적인 윤곽이고, 폐쇄성을 낳는다.

폐쇄성은 갇혀있는 조직을 형성한다.

갇혀있는 조직은 그들만의 효율적인 생존전략이 필요하고

낭비없는 명령체계를 동반한다.

따라서, 폐쇄적인 곳에서는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없고

획일적이고 순종적이며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자리를 잡는다

통일된 가치관, 일사불란한 움직임, 어긋남 없는 질서 같은 것들이 추구된다


개별적인 영역의 담보를 필요로 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다른 동물을 맞닥뜨리는 일에 미움의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다

어느 한 군데 정착하여 서로 다른 종들끼리 모여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함이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그 개체가 나에게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만 고려된다.


반대로, 군중과 집단 영역의 담보를 필요로 하는 인간세계에서는

다른 인간을 맞닥뜨리는 일에 위협의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다

평소 서로서로 문명화된 곳에서 한 군데 모여 살았기 때문에

낯선 생명체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나의 평온한 일상에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되는지만 고려된다.


문명의 발전을 추구하며 모여사는 인간들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이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정서가 마련되려면,

비교와 저울질을 부추기는 거리가 서로 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미움, 증오, 혐오라는 감정은 가까이에서 생기는 감정이다.

그것은 먼 곳에 있는 대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흔히 마주하는 물건, 자주 보는 사람, 매번 다가오는 감정들 속에서 싹을 틔운다


"깊은 반감은 은밀한 친밀감을 입증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혐오의 감정 속에 숨어있는 가까운 거리를 직감했던 것 같다


현대인들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을 공격하고 집착하고 되새기는 특성을 보인다

옆에 있으면 칼로 찌르고 쪼갤 것처럼 무도하게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 앞에 현실로 마주 서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색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아주 수줍은 듯 얼굴을 돌리기도 한다


마치,

평생 갈구해 왔지만,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오랫동안 간직해 왔지만, 들어줄 이 없는 목소리를 읊조리는 것처럼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이룰 수 없었던 성취에 좌절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결핍의 감정과, 공허의 마음을

누군가를 통해서 대상화하고 나 가까이에 두고선

증오와 혐오라는 무력과 폭력의 도구를 이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옆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곳에서!


어쩌면

미움, 증오, 혐오는

관심과 반응이라는 상호관계를 드러내는

인간세계의 고유적 생태계 속에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 맞물려있는 것.

다만,

우리는 그러한 에너지를 부디,

보다 아름답고

보다 정의롭고

보다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도록

그 가까운 거리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혹시라도 그것이 집착과 조롱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추스르는 것이 좋으리라.


우리는 먼저,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자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지도 말자

시샘과 열등감을 낳는 비교문화에 이용되어

억울하게 타인에게 집착하는 악의 도구로 사용되지는 말자

그전에 나 자신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그 속에 조용히 들어앉아

차분하게 내면을 들여다보자

그것이 단련이 된다면,

타인과 나 밖의 세상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내 생각, 내 의지, 내 기분이 우선적인 것이 된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먼저 자리를 잡고 나서

주변의 세상을 둘러보라

그러면 그 어떠한 것도,

나 자신의 행복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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