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워지지 않는 기억 자국이 노 작가의 가슴 한편에 남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사람이었으며, 거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서로의 관계는 좋지 않았지만, 가족으로서 맺어지는 역사란 호감의 저편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나직하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끄집어내었고, 읽는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각적 필치가 그의 나이와 함께 어느 정도 초연해진 거리를 느끼면서 접근할 수 있도록 다가갈 수 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고양이를 내다 버리려고 아들과 함께 떠난 짧은 여정을 그린 도입부는, 머묾과 떠남, 얽히는 것과 풀어내는 것, 주어지는 것과 선택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 시대의 고단한 인생들을 상징하는 듯했다. 결국 자신을 내보낸 집으로 아무런 원한 없이 되돌아온 고양이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부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를 빌어 이 책 전체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의 가벼움과, 내 앞에 던져진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무력함에 대한 찬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팬들의 호불호를 뚜렷하게 나타내는 유명한 작가의 역사관을 한때 우리가 주목했던 이유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체험한 가족의 경험을 안고 태어나야 했던 스타 작가의 태도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응시하려 했던 것도 있었지만, 언제나 기억과 회상, 회귀와 외로움을 그리며 전진해 온 작가의 인간관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고 싶었던 독자들의 지지가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실제 사건 속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그려낸 작가의 어린 시절 속 어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는 털어내고 싶은 응어리 같은 것으로 과거를 응시하고 결국 자신과 틀어졌던 아버지와 화해한다. 물론 그 매듭이란 거창할 것은 없을지라도, 그 시대의 사람들을 옥죄어왔던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의 감정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몸부림치고 소멸하는지를 담담하게 지켜보게 함으로써, 한 작가의 소설과 그 세계의 토양이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평소 그의 소설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다수의 소설 속에서 그토록 다루고 싶어 했던 것들과 유난히 공통적으로 등장시키는 소재들의 변주는, 그가 이 작은 회고록에서 언급하는 기억의 한편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글은 짧고 의외로 가볍게 흘러가며, 내용은 무겁지만, 그림은 섬세하다.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무라카미 월드의 마지막 퍼즐 같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