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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13. 2024

손자병법 / 손무(孫武) / BC 5c


무려 2,500년 전의 병법서이다. 군사를 다루는 작전 매뉴얼이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심리, 군중의 습성, 인내와 결단, 숙고와 헤아림, 도전과 응전.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소리 없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영위하는 상황에 대한 모든 대응 방법과 철학을 찾는다.


원본의 저자는 손무(孫武)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춘추 시대 오나라왕 합려(闔閭)를 섬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해지는 손자병법은 그 원본은 아니며, 조조가 요약한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이다. 내용이나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보면 원본 자체가 손무의 저술이 아니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손무의 여타 기록이 전무한 상황이며, 손자병법의 내용 또한 손무 사후 전국시대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확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썼던, 이 유려하고 세심한 인문학적 병법서는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읽는 이의 마음을 관통하는 고전의 힘이 있다.


손자병법의 내용은 '시계(始計) / 작전(作戰) / 모공(謀攻) / 군형(軍形) / 병세(兵勢) / 허실(虛實) / 군쟁(軍爭) / 구변(九變) / 행군(行軍) / 지형(地形) / 구지(九地) / 화공(火攻) / 용간(用間)'의 13편으로 구분되어 이어진다. 모든 구분은 주변상황과 지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현실적 자세가 가득하다. 


하지만, 손자병법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다룬다는 것이다. 싸우는 것을 알려주려는 책은 결국 싸우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각 챕터마다 이어지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결국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꺾고, 없음으로 있음을 다루며, 고요함으로 분주함을 누른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촉감을 만족시켜 주는 것만을 찾는 말초적인 현시대에 그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을 갖는다.


세(勢)란 이(利)로 인해 권(權)을 제하는 것이다. 
백전 백승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싸워야 할 경우와 싸워서는 안 될 경우를 아는 사람은 승리한다. 
난(亂)은 치(治)에서 생기고 겁(怯)은 용(勇)에서 생기며, 약(弱)은 강(강)에서 생긴다.
제후를 굴복시키려면 해(害)로써 하고, 제후를 사역시키려면 업(業)으로써 하며, 제후를 달리게 하려면 이(利)로써 한다.


문득 느껴졌던 것이, 임진왜란 속에서 등장하는 전장의 교훈이 그야말로 모두 이 작은 책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것. 절지(絕地)를 등지고 무리하게 허세를 부려야 했던 신립의 죽음과 문경새재의 높고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지 못함을 꾸짖었던 이여송의 한탄은 손자병법이 얼마나 실제적인 병법서였는지를 깨닫게 한다. 


문경현 남쪽 10여 리 지점에 경상 좌도와 우도의 경계에 고모성이라는 옛 산성이 있다. 성 주변의 지형은 두 산골짜기가 마치 가운데를 잘라 묶은 듯하고 골짜기 가운데로는 큰 시내가 굽이쳐 흐르며, 길은 그 산성 아래로 골짜기를 따라 뚫려 있는 그런 곳이다. 적군은 이곳을 지키는 군사가 있을까 두려워서 사람을 시켜 두 번, 세 번 탐지해 본 뒤에야 지키는 수비병이 없는 것을 알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 후에 명나라 장수인 제독 이여송이 적군을 추격하여 조령을 지나다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렇게 좋은 요새가 있는데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총병 신립은 전략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징비록 / 유성룡)


상대방을 파악하고 형세를 다스리는 자세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 누군가를 대하는 마음,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준비 같은 것이 손자병법의 많은 지침 속에 녹아들어 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얼핏 조잡한 물건을 세밀하게 만들어 기괴하고 가볍게 발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의 몸은 여전히 고단하고 영겁의 세월을 변함없이 견뎌온 것처럼 묵직하다. 그러므로 나는 과학문명을 구실 삼아 정신적인 것을 배제하는 현시대의 오만을 믿지 않고, 수 천년을 우직하게 이어져내려 온 고전의 지혜를 믿는 편이다. 


작은 책 속에 알알이 들어박힌 투박한 글자가 누군가에게는 따분한 헛소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진주 같은 보석이 되는 것. 소리 없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이 값싸고 수수한 책 앞에서 나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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