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풀장에가있겠습니다7월10일오후3시'
큼직큼직 아무렇게나 비뚤삐뚤하게 쓴 것이 아키오의 손으로 쓴 것이었다
'항상가던곳에있겠습니다'
항상 가던 곳이란 어디일까? 아마도 공원이거나 어떤 즐거운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얼마나 즐거운 장소였을까.
'마루밑강아지일은어머니한테말하지말아주십시오9월3일오후7시반'
'울고있으니까숨겨도아실거라생각합니다'
그 강아지의 마지막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지금천국에서놀고있습니다'
암호는 실제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고 그리고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사카구치 안고의 '암호'라는 단편소설. 일본명단편선을 접하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도는 강력한 작품이었다. 개개인의 취향이겠지만, 몇 개월간 지속적으로 뇌리에 남는 소설들은 메모해두지 않으면 일부 사라지기도 하고, 끝까지 남아 있기도 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아이들의 사망, 아내의 실명, 친구의 죽음. 그 사이를 어떠한 책 한 권에 들러붙은 암호 조각이 실마리를 풀어준다. 이 작품은,전쟁이라는 참혹한 환경 속에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스스로의 천국을 만들어 놀이를 하고 행복을 찾는 동심을 선사한다. 이 글을 읽는 도중에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읽고 나서 가만히 멍 때리고 있다 보면,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메모지에 자신들만의 암호를 적어 책에 끼워놓고, 형제끼리 서로 해독하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독자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게 하는 힘을 가진 작가는 흔하지 않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는 어른들의 만행. 그 속에서 죽어가는 죄 없는 시민들. 세상에 드러나기도 힘들 정도로 한 순간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의 슬픔은 말로 헤아리기 힘들다. 그야말로 침략과 전쟁으로 점철된 광란의 시대였다. 잔혹한 만행이 앗아간 천진한 영혼의 움직임들은 마치, 한 치 앞을 모른 채 현실이라는 무대로 거리낌 없고 행목 하게 뛰어드는 애완견의 순수함을 닮았다. 그리하여, 이 책의 말미에 강아지에 대한 내용을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염려하는 부분은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