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좀 있다. 사람들 입에 쉽게 오르내리는 것들 중에 주목할만한 3개를 골라본다. 각각은 허무, 집착, 번뇌를 상징한다. 해골은 육신을 짊어지고 사는 인생의 고통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남은 쓸쓸한 흔적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머리뼈, 즉 두개골은 인간의 혼과 연결시켜 죽어서도 인간처럼 여겨지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눈, 코, 입의 형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속세에서 하지 못한 말, 원혼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소환하는데 많이 쓰인다. 햄릿과 무로사이세이, 그리고 원효대사의 두개골 에피소드를 좀 들여다보자.
1. 요릭(Yorick)의 해골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해골이다. 이런저런 수난을 당한 햄릿이 구사일생으로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인부가 파헤치는 무덤가를 우연히 지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궁정에서 광대노릇을 하던 요릭이라는 인물의 두개골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에 있었던 것 같은 인물이 어느새 죽어서 두개골로 남은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를 느낀다.
아아. 불쌍한 요릭! 나도 잘 알지 호레이쇼. 재담엔 첫손가락을 꼽았지. 우스갯소리도 대단했고. 그가 나를 천 번은 등에 업고 다녔을 거야. 지금 이 꼴이 되고 보니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구나!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 이쯤 달려 있던 입술에 내 얼마나 자주 입을 맞췄는지 모른다. 이제 어디 갔느냐, 너의 익살? 너의 광대춤, 너의 노랫소리, 좌중 모두를 배꼽이 빠지게 웃겼던 기막힌 재담은? 이렇게 이빨을 드러낸 네 모골을 너 자신이 비웃어 보라고. 웃고 싶어도 아래턱이 빠졌던 말인가? 그래 요릭, 그 꼴로 여자들 방으로 달려가 아무리 두껍게 분을 두껍게 찍어 발라 치장을 해도 결국 이 꼴처럼 될 거라고 가르쳐 줘라. 여자들을 웃겨 보라구....
2.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의 해골 (しゃりこうべ)
국내에서 한글로 접하기 힘든 소설이다. 유일하게 일본 명단편선(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로테스크 미학과 간결한 언어가 일품이다. 매우 짧은 단편이고, 어감 하나하나가 진귀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힘이 있다. 이미 해골이 되어 방바닥 놓인 남편해골과 아직 살아있는 늙은 노파가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파 자신은 저런 해골이 되지 않으리라 마음먹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어서 조용히 죽어주기를 바라는 자식들의 넋두리는 말 그대로 각박하고 공포스러운 삶의 애환을 드러낸다. 결국, 시간이 지나 각각 해골의 모습으로 마주한 늙은 부부의 모습이 마치 괴담처럼 펼쳐지면서 막을 내리는데, 생에 대한 집착과 고독한 숙명을 느끼게 한다.
해골이 말했다. "이제 멈춰"
"아니요, 나는 내가 할 만큼의 말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나중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을 대로 하면 되겠지. 나 하나에 들러붙은 숙명으로 너는 이미 질렸을 테니까 적당히 그만둬."
"당신은 해골인걸요. 그런 말을 하든지 않든지,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흠, 역시 나는 해골이다. 하지만 너도 그렇게 되어 버릴 거야, 젓가락 끝으로 전에 내 머리통을 집어 든 것처럼 자녀들이 그걸 집어 들게 되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해."
"아니요, 저는 아직 아직인걸요. 정말 아직 아직이야."
3. 원효(元曉)대사의 해골
국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민담 같은 것이지만, 사실 출처는 불분명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송고승전, 임간록 등에 원효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만, 원효가 직접 해골에 들어있는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조선시대 쓰인 [해남 대둔사 사적비명]이라든지, [동사열전] 같은 곳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있어서, 아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다들 아는 내용이지만, 원효가 의상과 함께 밤새 어두운 산속을 거닐다가 잠을 청하기 위해 동굴 같은 거처에 몸을 눕혔는데, 목이 말라서 급하게 주변에서 물을 찾았고 때 마침 그릇에 물이 들어 있어서 벌컥벌컥 마셨다가, 완전히 잠이 깬 후 아침에 확인해 보니 그릇이 아니고 두개골에 들어있던 썩은 빗물이었다는 소리. 그러므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인식과 해석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므로, 마음속의 번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