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퇴근하면서 어머니 전화를 받은 것 같다
어머니가 위중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호스피스병실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스스로 들어가려는 어머니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아내 앞에서
나는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남자없는 집안의 여자들 이야기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했을 것이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본다.
30년이 넘은 이야기들이다
전체를 놓고 보면 줄어들고 늘어난 것들이 있지만,
사람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생각을 떠올리니 막막하고 한숨만 나온다.
문득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마지막은 말 그대로 끝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돌이켜 원망을 하거나 책임을 묻거나 따져볼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무를 뜻한다.
그것만큼 무심하고 공포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숨통을 조여오는 직장의 스트레스
불안감을 조성하는 생계의 걱정
검은 피를 담고 살아야 하는 팔자의 개탄
이제는 너무도 늙어버린 오래된 가족들을 마주해야하는 괴로움.
내가 어릴 때 제주도의 여인들은 모두 젊었다
혈기왕성하고 하고싶은 것들이 많았고
원망과 서러움도 많았으며
웃음과 열정도 가득하였으리라
수 많은 실수와 착오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악연과 필연들.
진정 꿈에서나 나올법한 기억들이지만,
모두들 잘 참고 견뎌서 지금까지 왔지 않았는가.
어디에선가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모두들 다 잊고 앞을 보면서 미치도록 질주한 인생들이었다
주름진 얼굴들에서 회한의 미소같은 것이 보일 때면
마치 고단한 전쟁을 마치고 작은 승리를 얻은 부상병들이
이름모를 긍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처럼,
오늘도 꿋꿋한 여인네들은 지독한 생을 이어간다
그러나 나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서러움과 고통이라는 악마에 사로잡혀
수십년을 원망과 증오 속에서 살아야했다
나쁜 기억은 1분 1초까지 하나도 흘리지 않고 모두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 같은 인간을 처음보았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인간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쾌락일까 고통일까.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다
인생이 이렇게 짧으니,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폼을 잡고 있는 것도 멍청한 짓일 것이다.
악마는 그러한 유치함 속에서 연명하는 것 같다.
그것이 악마의 본성이다.
안좋은 기억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아주 평범한 이들의 조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명언이 된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족쇄의 무거움.
나는 그것이 싫다
메스껍고 어지럽다
심지어 육체적으로 목덜미와 어깨가 아파오기도 한다.
내일 아내와 딸을 데리고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그 동안 너무 소홀했다
나는 문득, 귀를 열고 듣는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입을 열면 주저앉고 싶을지도 모른다
괴롭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따져물을만한 것이 없는 이 번다함을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나도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유년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살아가는 내내 쏟아부었던 집념의 씨앗이
나의 가정 속에 고스란히 뿌리박혀 있기에
나는 가장의 책임이라는 업보를 짊어져야 한다.
대자연이라는 것은 무수한 반복을 달린다.
그 속에 어느 인생의 한 마디가 가로놓여 있다
더 멀리서 보면 그것 또한 무수한 반복이다
그보다 더 멀리서 보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정답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으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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