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해석하고 엮은이는 박영서, 일기의 저자들은 당연히 당시 글을 아는 양반가들 사람이었겠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그야말로 생활의 밑바닥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양반과 노비들과의 티키타카도 일품이다. 암행어사와 그를 보고 줄행랑치는 부정관리의 모습도 마치 드라마 같다. 과거시험장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행태들, 땅을 사고팔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도 가관이다. 혹시라도 본인이 일기를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옛날이야기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읽어나갈 수 있다.
백범일지나 난중일기 같은 유명한 일기가 아닌, 일상성이 가득 묻어는 개인 조선시대 일기들을 모으고 발췌하였다. 주요 자료는 [김령의 계암일록, 김광계의 매원일기, 노상추의 노상추일기, 오희문의 쇄미록, 이문건의 묵재일기, 심노숭의 남천일록, 박래겸의 서수일기, 윤이후의 지암일기] 에서 추렸다. 제각각 한 개성, 한 고집들 하는 사람들이라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뚜렷하고 단단하다. 해학과 뒤틀림의 미학이 뒤섞여 있어서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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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선생님,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요즘 암행어사가 우리 지역에 왔다는거 아십니까?"
"알고 있죠."
"그러면, 암행어사를 사칭하는 가짜 어사가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것도 알다마다요."
내가 이처럼 대답을 척척 하는데도 그들은 내가 수상쩍다는 말을 계속하더니, 결국 허리춤을 살짝 걷은 채 포승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도 당연히 아시겠네요?"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그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체포할 기세였다.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 도포 자락을 살짝 들어 보이며, 나긋하게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그들은 내 허리춤에 달린 마패를 보자, 눈알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며, 말문이 막혀버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덕을 뛰어 내려가면서 도망쳤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넘어지더니, 뒤따라 도망치던 이들도 발이 엉켜 모두 데굴데굴 한참을 구르다가 저 아래 이르러서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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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4월 22일, 서수일기 중)
이렇게 분별없이 재미있는 일기도 있는가 하면, 시집보낸 딸아이를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기도 있다. 하긴 조선시대 성별구분이 엄격했던 그 막연한 시절을 생각해 볼 때, 재미있고 행복한 날들보다는 고단하고 불합리한 일들 투성이었음을 인식한다면, 이러한 일기자료를 대하는 마음이 다소 먹먹하고 아련해질 것 같다.
시댁으로 떠난 둘째 딸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아버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시댁의 올해 농사가 좋지 않아서 수확량이 얼마 안 되네요. 내년 농사가 걱정이지만, 어떻게든 해 나가야죠. 다만, 요즘 남편이 가끔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을 해요. 그래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도 잘 지내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올해 농사가 망했으니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갈까. 또 사위는 전쟁(임진왜란) 중에 사고를 당한 뒤로 감정이 오락가락하는데, 내 딸은 성격이 느긋하고 화평해서 사위와는 성격이 맞지 않을 것이다. 딸은 비록 담담히 적었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슬프고 상처받고 있을지 느껴져 눈물이 흐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밤새도록 아내와 나는 딸아이 걱정에 서로 탄식하며 잠을 자지 못했다. 이 또한 딸 가진 부모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까. (1600년 10월 2일, 쇄미록 중)
오래된 시기를, 막연하게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현실감과 인물감, 그리고 물질감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