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존 사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도시독법, 개발과 보존 사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곧 시작될 가을을 기대하게 되는 9월의 첫 주말, '도시독법'을 읽었다.
이 책은 미국인의 눈으로 본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 책이다. 한국의 서울, 부산, 인천, 대전, 전주, 대구에서 일본의 도쿄와 교토, 영국 런던, 미국의 뉴욕과 라스베이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의 도시의 변천사에 대한 이방인의 시각은 흥미롭다.
각 도시를 바라보며 저자는 묻는다. "살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다시 정리된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도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의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정답이 없는 물음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유년기를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는 인천 구도심이었다. 낡고 오래된 2층 가옥인 우리 집은, 아담한 꽃밭에 아름드리 향나무가 있었기에 '향나무집'이라고 불렸다. 마당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풀어 길렀고, 장독대를 지지대 삼아 세운 빨랫줄에는 참새와 잠자리가 쉬어가곤 했다. 책 내음이 가득한 2층 다락방에서, 계절마다 마당 한켠에 피어난 형형색색 꽃들과 향나무 위로 탐스럽게 열린 호박을 구경하던 기억도 난다.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여름비가 내리면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늦가을이 되면 꽃밭 한켠을 파내고 김치를 가득 담은 항아리를 묻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대청마루 앞에 문을 달고 난로를 놓고 구석구석 문풍지를 붙였다.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연탄난로 위로 맛있게 구워진 가래떡을 먹는 것이다. 제법 눈이 쌓이면 마당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지붕의 고드름으로 코를 붙였다. 그리고 대문 밖으로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포대 자루를 들고, 눈썰매를 타러 언덕배기로 달려가는 것이다.
중학생이 되며 우리 집도 나름 신식(?) 아파트로 이를 가며, 이러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인천 구도심에도 재개발의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었다. 군에 다녀오니 옛 동네가 사라지다시피 했고,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아예 '달동네박물관'이라는 것이 생겼다. 송도국제도시라고 하는 번듯한 공간이 생겨났고, 그 이상으로 내가 살았던 구도심은 쇠락했다. 지금도 개발과 보존의 논리는 충돌하고 불화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옛 방식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낡고 오래된 가옥은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웠다. 고양이들이 활약했지만, 이따금 쥐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비가 많이 오면 마당에 물이 넘치고, 가뭄이 들면 단수가 시행됐다. 좁고 울퉁불퉁한 골목길은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날카로운 쇠창살을 병조각을 박아 담 끝에 박아 넣는 것이 유행일만큼, 좀도둑도 참 많았다. 정이 많았다고 하지만, 다툼과 사건도 잦았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당시 생활로 돌아가라고 하면 꽤나 많이 망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도시 독법'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책의 미덕은 '개발'과 '보존' 중 어느 한 쪽만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생물과 같은 '도시'는 쇠퇴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한다. 다양한 욕망을 보유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문제기에 상황은 한없이 복잡하며, 명쾌한 해법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저자는 도시를 완성하는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결국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 풍성한 '삶'을 선사할 수 있는 공간이 좋은 도시이며 번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개발과 보존은 모두 그 방법 중 하나이며,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점차 그 구분도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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