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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27. 2023

파친코,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

잊힌 재일 조선인에 대하여. 이민진, <파친코>



재일 조선인: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교민의 가리키는 말로 일본 교포와는 구별되는 개념.



'재일 조선인'.

우리의 의식 속에서 잊혀 있던,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시대의 재일 조선인의 역사.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배울 때나 논할 때,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받은 우리 땅의 조상들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각종 이유로 인해 일본으로 넘어간 재일 조선인은 대개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한 번도 생각도, 이야기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파친코>에서는 조선에서는 일본인 취급, 일본에서는 '더러운 조선인' 취급을 받으며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4세대에 걸쳐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전쟁의 시기를 겪은 1세대 양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의 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살던 2세대 선자, 학교에서부터 사회인이 되고 나서 까지 조선인이라고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던 3세대 노아와 모자수, 그런 삶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덕에 해외에서 공부하지만 결국에는 그 대물림을 피할 수 없었던 4세대 솔로몬.

이들의 삶은 4세대가 지나가는 동안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못 느끼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나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아니 애초에 뿌리가 없이 물 위를 부유하는 듯한 삶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면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단연 노아다. 노아는 고한수와 선자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서 태생 자체가 '재일조선인의 삶'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불안감, 존재 자체로 떳떳할 수 없는 내재된 슬픔. 내가 일본인이었으면 좋겠고, 이삭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는 자기부정의 마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일까.

노아는 일본인이 되고 싶었고, 죽어라 노력해 와세다 대학을 갔지만 그의 노력과는 별개로 그는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아무리 스스로 이삭의 아들이라고 외쳐도 이삭의 아들이 될 수 없던 것이다. 결국 세상에 부정당한 삶은 곧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삶이 되었고, 그렇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노아의 마음이었다.

이런 삶을 대물림해 주고 싶지 않아 모자수는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해외 대학에 보냈고, 일본의 유수한 은행에 취직시켰다. 하지만 솔로몬은 곧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이용당한 뒤 부당해고를 당하고, 결국에는 일본 땅에서 야쿠자와 연계된 더러운 일로 여겨지는,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아야만 했다. 그때의 솔로몬의 마음은, 그리고 모자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허무했을까. 분노했을까. 아니면 모조리 포기한 심정이었을까.

아들부터 손자까지 똑같이 대대로 이어지는 모든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선자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선 쉽게 가늠이 안 되는 마음들인 것이다.
 
그때 조선에 없었으니 그 힘든 강점기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고, 그러니 조선 땅에서 그 시기를 이겨낸 조선인들 앞에서 힘들다고 이야기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들. 그렇다고 일본인이 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들. 여태껏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참 억울하고 어려운 마음이었다.


재일조선인(자이니치 조센진)은 아직까지도 일본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약 44만 명이 일본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일본 국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2등 국민, 하층민으로 분리된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본인이 '자이니치 조센진'임을 숨겨야만 한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해야 하는, 뿌리 없는 삶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은 현재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강꼬꾸징이니
조센징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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