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요 Oct 21. 2021

왜 서브웨이는 키오스크를 안 만드냐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UX

요즘 심심치 않게 보이는 의견 중 하나가 "왜 서브웨이는 키오스크를 안 만들지?"였다. 서브웨이에 같이 간 친구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길래 흥미로워서 생각해봤다. 하긴 서브웨이의 복잡한 주문 방식은 악명 높다. 골라야 할 것은 아주 많은데 이거를 매대 건너 직원한테 일일이 큰 목소리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맛을 골라야 돼 주문이 까다로운 편에 속하던 배스킨 라빈스도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근데 서브웨이는 왜 어려울까? 먼저, 서브웨이 가게에 가서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의 여정을 한 번 살펴보자.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방법


1. 메뉴(샌드위치 종류)와 샌드위치의 크기를 고른다.

2. 빵의 종류를 고른다. 이때 빵 속을 파낼지, 데울지를 선택할 수 있다.

3. 그다음 치즈를 고른다.

4. 아보카도, 계란, 베이컨 등의 추가 메뉴를 넣을지를 선택한다.

5. 안 먹는 채소가 있다면 말한다. 특정 채소를 더 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6. 소스를 고른다. 다중 선택도 가능하다. 소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추천 소스를 많이들 물어본다.

7. 음료쿠키를 희망하면 추가한다. 경우에 따라 세트로 묶어준다.

8. 포장할지 먹고 갈지 결정한다.

8. 결제한다.

9. 음료 컵을 받아 원하는 음료를 직접 따른다.


볼드는 모든 선택사항이고 그중 필수적인 건 볼드초록이다. 필수 선택사항만 9개고 상당히 복잡하기는 하다. 이거를 키오스크에 적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키오스크로 서브웨이를 주문할 때 생기는 문제


기존에는 시공간적으로 평행하던 주문 방식에 갭이 생긴다.

시간적 문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 극강의 효율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컨베이어 벨트식 주문 방식이다. 주문자와 직원이 실시간으로 같이 이동하며 결정과 동시에 제작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면 주문 완료를 해야 직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샌드위치를 하나 이상 주문할 경우 여러 개의 샌드위치 옵션을 다 고를 동안 주문이 접수되지 않기 때문에 주문 발생 시점과 제작 시점의 갭이 배로 커질 것이다.

심지어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것 자체도 오래 걸릴 것이다. 적어도 그 어떤 프랜차이즈 주문보다 소요 시간도 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키오스크는 보통 한 화면에 하나의 태스크만 부여한다. 위의 필수적인 선택사항을 고려하면 적어도 9개의 화면을 넘기며 선택해야 하는데, 터치 잘 안 되는 키오스크 기기라면... 나 같으면 포기한다.

공간적 문제: 서브웨이 측의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서브웨이 매장 공간은 협소한 편이다. 주문 동선을 고려해 재료를 진열한 매대가 길게 자리 잡고, 그에 맞춰 줄을 설 수 있게 좁은 복도가 나있는 형태다. 그 외에는 먹고 갈 수 있도록 테이블이 자리해있다. 기존의 방식에 맞게 공간을 최적화해두었기에 키오스크를 둘 자리가 마땅히 없을 매장이 많다. 특히 점심시간처럼 사람이 몰릴 때 키오스크에 줄을 설 공간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피그잼으로 급히 그려본 서브웨이 매장 내부. 오래된 매장일수록 좁은 경우가 많다.



단일 선택, 다중 선택, 선택 제외 등 선택 유형이 복잡하게 혼재돼있다.

사용자에게 기기 별로 익숙한 조작 방식이 다르다. 키오스크는 많은 기기 중 가장 덜 친숙하고 불편한 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스크를 최대한 적고 간편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메뉴를 착착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는 정도가 딱 적당하다.

서브웨이는 단일 필수 옵션(메뉴, 빵, 치즈), 다중 필수 옵션(추가 메뉴, 소스), 단일 선택 옵션(음료, 쿠키) 등 사용자에게 인지시켜야 할 태스크 유형이 많다. 특히 채소의 경우 다른 옵션들과 다르게 '모두 선택'이 디폴트고 '제외할 채소'가 뭔지 물어봐야 한다. 모든 옵션이 선택된 상태에서 안 먹을 채소를 선택 해제시키거나 먹을 채소 대신 제외할 채소를 고르도록 문구로 안내를 해야 하는데, 전자는 생소하고 헷갈릴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문항마다 문구를 자세히 읽는 사용자는 드물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하늘 아래 같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없으므로, 수량 선택 기능을 제공해도 위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어렵다.

빵의 속을 파낸다든지, 좋아하는 치즈/채소를 더 넣어달라는 추가 요청은 포기해야 한다. 소스를 추천해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서브웨이의 큰 매력 요소는 개인적인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키오스크로는 살리기 어려운 기능이다. '오이는 빼고 할라피뇨랑 올리브 많이 주세요'를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키오스크가 안된다 해도 현장 주문 경험이 불편한 건 그대론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가 생각났다. 시공간적인 제한이 없고, 근처 매장에 도착하기 전에 항상 먹는 메뉴로 미리 주문해두고 찾아가는 방식이 훨씬 편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서브웨이 앱이 이미 있더라.




서브웨이 앱이 이미 있는데 왜 안 쓸까

앱 평점이 1.8로 형편없었다. '선주문을 넣어도 마지막에 만들어준다', '근처 매장 주문이 안된다', '결제 시스템이 작동 안 한다', '회원가입/로그인 오류' 등의 운영상의 문제들이 가장 많이 보였다. 나 역시도 회원가입에서 막혀서 앱 사용 후기로만 참고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UX적으로 참고할 보이스는 다음과 같았다.


1. 소스/치즈 추가 안 되는 것

2. 주소지 여러 개 입력이 안돼 근처 매장을 찾기 불편한 것

3. 요청 사항 기재란이 없어 빵 속을 파달라는 등의 요청을 따로 할 수 없는 것

4. 매번 먹는 건 똑같은데 주문할 때마다 새로 옵션을 선택해야 하는 것


특히 마지막 보이스가 가장 공감 갔다. 사실 서브웨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쿠팡 이츠와 배민에서 주문하면 1~3번의 문제는 해소된다. 근데 쿠팡 이츠, 배민을 사용하더라도 매번 선택지가 초기화돼 다음 주문 시 다시 골라야 하는 문제는 여전하다. 서브웨이를 애용하는 사람은 즐겨먹는 메뉴 몇 가지로 이미 정해져 있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느끼기엔 그랬다(점심 주문할 때 어느 정도 누가 뭘 시킬지 알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다). 서브웨이 앱을 다운 받아 사용할 정도면 그 정도로 충성도 높은 사용자일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나만의 메뉴'를 제공해 항상 먹던 샌드위치 옵션을 저장해둘 수 있다면 기나긴 주문 플로우를 싹둑 잘라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거기에 추천 조합을 주문 플로우 내에 매끄럽게 녹여내고, '소스 추가', '빵 파주기' 등의 옵션은 요청 사항에 프리셋으로 제공하는 것도 서브웨이 앱만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다. 서브웨이 앱은 충분히 매력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전제는 기본적인 사용성이 뒷받침됐을 때 이야기다. 위의 운영상 문제들 해소하기, 간편 로그인/결제 도입하기, 포인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마련하기, 등 손 볼 곳은 아주아주 많다.)

나부터도 서브웨이를 즐겨먹는 한 사람으로서 서브웨이 앱이 잘 업데이트된다면 사용할 의향이 매우 있다.

우리 회사에 의뢰 왔으면 좋겠다. 잘 만들 수 있는뎅


매거진의 이전글 PM을 위한 디자이너/개발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꿀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