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kemaker)
감독 –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출연 – 사라 애들러, 팀 칼코프, 로이 밀러
어떤 영화들은 개봉 1년 전부터 기다렸다가 개봉날 달려가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영화들은 무심결에 돌린 TV채널들 중에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개개인의 접근법에 대한 차이는 있겠지만 그 태도에 따라서 영화는 다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케이크메이커’, 이 영화는 전혀 사전정보 없이 본 케이스네요. 단지 리플릿만 보고서는 영화 안에서 빵 좀 굽나 보구나. 맛있는거 많이 나오겠네~. 보고나서 빵 사먹으면 되나? 이런 유치한 생각이나 하며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쌓은 전.. 뭐라해야할까요 ㅎㅎㅎ. 그런데 이 영화보고 나니 빵 생각이 전혀 안납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토마스와 오렌의 만남으로 시작을 합니다. 파티쉐인 토마스, 비니지스로 인해 베를린과 이스라엘을 오가는 유대인 오렌은 연인 사이가 됩니다. 오렌은 이스라엘에 아내와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와 동성애의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합니다. 유대인이라 하면 신앙생활이 강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좀 특이한 설정이네요.
영화의 스토리는 길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렌을 잊지 못하는 토마스는 오렌이 지내던 이스라엘에 찾아가 오렌의 흔적들을 찾습니다. 이스라엘에 남편 오렌을 잃고 아들과 혼자 남겨진 미망인 아나트는 토마스를 까페의 알바생으로 쓰게 되면서 둘은 만나게 되죠.
스토리는 사실 별 특이점이 없습니다. 다만 나라적 배경과 동성애, 종교적 배경이 좀 들어있다는데 좀 이색적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 보다 이 영화의 가진 강점은 등장하는 인물들에 있습니다.
감독과 출연진들을 살펴보면 당연히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입니다. 배우들의 얼굴 역시 생소하구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니에요. 너무 평범합니다. 그냥 내가 갖고 있는 무뚝뚝한 독일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빵 좋아해서 빵 만들 것 같은 토마스,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라 세월의 풍파가 좀 더 거칠었던 것 같은 아나트.
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해소해 내질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없는 토마스는 슬픔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작별인사 없이 떠나보낸 연인의 흔적을 쫓기만 합니다. 달리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무엇하나라도 더 떠나간 이의 흔적을 찾고만 싶습니다. 그것이 연인의 아내였던 사람일지언정.
아나트는 남겨진 아들을 키워야하는 현실 속에 정신이 없습니다. 죽은 남편에 대한 생각조차 할 시간을 갖질 못하네요.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겨내려는 모습이 억척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게 남겨진 사람들의 현실이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쯤 보면 토마스가 뺨맞고(아나트가 때린건 아니고)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짜 글자 그대로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줍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토마스는 눈물을 흘리죠. 멋있게 또는 예쁘게 우는 장면도 아닙니다. 제가 슬플 때 그러듯이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웁니다. 영화 내 살며시 덮어둔 채 가져오고 있던 슬픔은 여기서 폭발합니다.
묘사 방법이 다소 지루하게 보여질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던져지는 정보나 회상장면들을 통해 영화에 리듬감을 어느 정도 살려줍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던 영화지만 거기서 오는 약점들을 설정의 특이성과 편집으로 어느 정도 보완해낸 점이 좋네요.
떠나간 사람을 애도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를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슬픔의 크기를 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해소하는 방식이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그 크기를 작다고 생각하면 안되겠죠. 눈물은 흘려야 하겠지만 그 짜내는 방식이 또한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런 면을 이 영화에서 보고 간다면 좋겠네요.
영화보고 빵사먹겠다던 생각. 빵이 뭐 목이 메어서 넘어가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