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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여름 Jun 18. 2019

우리의 계절은

Flavors of Youth, 2018






'너의 이름은' 으로 이름을 알린 신카이 마코토 제작진이 연출한 넷플릭스 제작 애니메이션 입니다. 3편의 단편이 옴니버스 식으로 엮인 70여분의 짧은 애니메이션입니다.



 3시간에 이르는 '엔드게임'을 엉덩이 한 번 들썩이지 못하고 앉아서 감상을 해내는 우리들은 어느새 2시간 이상의 장편 영화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대중가요는 흥행을 위해 음원시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에 비해 영화는 반대의 행보를 하고 있죠. 대부분의 감독들은  표현욕구 탓에 러닝타임이 점점 길어지는 걸 선호하고 제작자들은 흥행을 위해 좀 더 짧은 영화를 원하기 마련인데  어느덧  90여분 짜리 영화를 보면 이거 왜이리 빨리 끝나 라는 느낌이 드는건 나 혼자만은 아니겠죠. 이런 추세에 힘입어 어느새 일반 장편 영화의 기준은 2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불과 10여년전 아니 그 이전 즈음에는 100분을 넘기면 영화가 너무 길다라는 느낌들이 있었지만요.











 장편의 영화들이 계속 등장한다 해서 단편 영화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의 맛이란게 또 있지 않겠습니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화같은 분위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장편 극사실 영화보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더 어울리는 포맷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계절은' 도 이와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너의 이름은' 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작화들은 아련한 추억 얘기를 담아 더 애뜻한 색을 칠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서 급성장한 필름과 카메라의 기술은 실용적 가치에서의 회화의 지위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사진의 등장 이전에 사실주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회화는 이미 그 행보나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르죠. 20여년전 진로를 애니메이션으로 정했던 저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미를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직 기술적 완성에 이르지 못한 그래픽이나 사진 등이 표현해 내지 못하는 바를 이룸으로써 말이죠.











뭐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저 조차도 신카이 마코토가 보여주는 작화의 완성이란 단계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사진도 회화도 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애니메이션이 담아내는 것이죠. 물론 이런 표현에는 기술적 발전의 힘이 작용했음을 짐작하시겠지만 그런 원론적인 오리지널에 대한 고집은 이미 필요없는 시대입니다.  아직 인물의 작화부분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형태를 취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 안했겠냐만은 작화가 주는 느낌상 변화가 좀 어려워 보이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절대 버리지 못하는 어떤 한 부분이랄까요. 한식 식단에서 김치를 뺄 수 없듯이요.









 '너의 이름은'이나 '언어의 정원'을 보셨던 분이라면 하늘과 빛, 비가 내리는 풍경들 묘사에 감탄했을 겁니다. 너무나도 아름답죠. 곧이어 개봉할 차기작이 '날씨의 아이'라는 제목이니 기대가 안될 수 없겠죠. 신카이 마코토 사단이참여했다는 '우리의 계절은' 은 분명 같은 아름다운 작화를 보여주지만 주목하고 있는 소재는 다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적인 모습을 동경하고 그 흐름을 따랐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면 '우리의 계절은'에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그 무언가가 그 연결고리가 되어 표현됩니다. 그것은 각 편에 따라 국수, 옷, 카세트 등으로 나타납니다.










 1편인 '따뜻한 아침식사'에서 그려지는 국수의 작화는 매우 디테일해서 나 역시 잔치국수라도 끓여 고춧가루라도 털어 넣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주인공에게 각인되어 있는 국수와 그에 관한 추억들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는 어떤 음식이 마음에 남아있나 하는 자문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떡국'아닐까 싶네요. 어린 나이에 뭐가 맛인지도 모르던 시절,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고명이 예쁘게 자리잡은 떡국만은 그 시절의 미각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2편은 '작은 패션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둘이 지내게 된 두 자매의 이야기, 이 편은 개인적으로는 감흥이 좀 덜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응하는 추억들이 남아있겠죠.










 3편은 '상하이의 사랑'. 10대의 숫기 없는 시절의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는 이야기. 그 얘기 속에는 이제는 틀기 어려운 카세트 테이프와 낡은 주택가의 골목길들이 같이 등장합니다. 이루어지지 못했던 과거의 첫사랑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위의 이야기들과 따뜻하면서도 디테일이 뛰어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따뜻한차 한 잔 하고 싶어지네요. 모처럼 얻은 가슴의 온기. 쉽게 떠나지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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