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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여름 Aug 09. 2020

영 어덜트

Young Adult, 2011




 주말이면 밤늦게 가족들이 다 잠에 들었을 때 몰래 일어나 헤드폰을 낀 채 TV를 켠다. 그러고는 넷플릭스 버튼을 누르면. 두~ 둥! 이란 소리와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음 뭐 새로 나온 게 있긴 하네. 이건 본 거고 요것도 본 거고. 이건 안 본 건데 모르는 영화네.'




 이리저리 리모컨을 누르다 보면 눈이 아플 지경이다.


본 것 또 보자니 왓챠에 본 영화 카운트 올릴 생각에 아쉬워서 새로운 영화를 찾는다.


나도 어서 2000편은 넘겨놓고 싶은 욕심에 조금 무리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오늘은 좀 피곤한데 머리 안 아프게 코미디나 한 번 찾아볼까? 얼마 전에 본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재밌던데.


라며 코미디 섹션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게 '영 어덜트'. 언제나 연기 변신이 대단한 샤를리즈 테론이지만 얼마 전에 '롱샷'같은 영화에도 출연하고 했던데 이것도 꽤 재밌지 않으려나 하는 기대에 플레이 버튼을 눌러본다.




 그런데,, 누가 이 영화를 코미디 섹션에 갖다 넣었나! 안 재밌다고!!














 이 영화를 보면서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같은 러브 코미디를 생각했다면 길을 한참 잘못 들어선 셈이다. 사실 이 영화의 겉모습은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긴 한다. 왕년에 잘 나갔던 메이비스 게리(샤를리즈 테론)가 10대 시절의 남자친구가 보내온 그리팅(딸이 생겼음을 알리는) 메일을 보고서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고향 마을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막 딸을 가진 전 남친을 다시 꼬시겠다는 생각을 갖고 말이다. 이 시추에이션만 듣는다면 하이틴 코미디의 성인 버전이겠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주연이 샤를리즈 테론 이라는 사실을 너무 간과했다. 본인의 미모에만 기대지 않는 언제든 머리도 밀어버릴 수 있는 이 대배우님을 내가.. 죄 죄송합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고등학교 퀸 자리를 꿰차고 대도시로 새로운 커리어를 떠났던 게리의 방문에 마을은 들썩인다. 성공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걸로 알려진 게리의 삶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실상은 한물간 하이틴 소설의 대필 작가일 뿐이지만 말이다. 고작 하이틴 소설이건만 이건 하나의 장르라며 용어까지 들먹이는 게리의 모습엔 허세가 가득하다.















 하이틴 무비에 늘 한 두 명쯤 있어줘야 하는 찐따 역할로 나오는 맷(패튼 오스왈트)도 어딘가 다르다. 적당히 찐따여야 하는데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심한 상처가 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극복해내고 자기 나름의 삶을 완성해낸 맷은 게리보다도 훨씬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전 남친 버디 슬레이드(패트릭 윌슨)를 만난 게리는 그의 아내 앞에서조차 예전 자신의 연애시절 얘기를 들먹이며 버디를 자극한다.  버디와 자신은 천생연분이라며 다시 만나야 한다며 서로 통한다고 맷에게 떠벌여 댔지만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걸 게리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알면서도 그래야만 했던 걸까.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는 게리의 모습은 경쟁이 치열화된 사회에서 도태된 어느 소외된 이의 한 표본처럼 보인다. 결혼에서는 실패, 커리어에서도 자신의 이름 하나 제대로 된 위치에 세워 놓지 못한 게리는 기껏 고향 마을을 찾았지만 부모님의 집에조차 찾아가지 않는다. 허름한 모텔방 밖에 빌리지 못하는 처지면서 가족들을 마주했다면 초라한 자신의 현실이 너무 쉽게 드러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일지도. 허세와 화장으로 자신을 감싼 채 과거의 화려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 화목한 가정을 깨뜨리고 옛남친을 되찾아 다시 여왕이 되겠다는 게리의 꿈은 더 이상 하이틴 코미디의 소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법한 버디의 딸 이름 짓기 파티(정말 이런 게 미국엔 있는 건가)에서 게리의 망상은 깨어지고 만다. 숨겨진 비밀이 클라이맥스에서 밝혀질 때 터지는 웃음과 쾌락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나 같은 남자들은 너 같은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라고 말하던 맷의 말은 고등학교 퀸을 선망하는 찐따들의 마음이 아니라 '나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들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맷의 위로는 게리를 작게만 만들었지만 다음날 아침 맷의 동생 산드라로부터 들은 자신의 껍데기 찬양에 게리는 다시 일어선다.






 Life, here I come






이라는 허세 가득한 대사를 날리며 망가진 차를 끌고 미니 애플 미네아폴리스로 떠나는 게리는 과연 성숙해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과거 속에서 허우적댈 것인가.




 물론 이 영화는 사실 게리를 비꼬자고 함에 목적이 있지 않다. 일련의 사건들로 게리가 분명 성장했고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을 하는 것이라고 극 중 게리의 소설을 빌어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도 아무리 사랑스러운 외모의 그녀라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건 게리가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기에 나는 그저 어쩌면 저 시골 마을의 버드 슬레이드 같은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인가 싶다.




 감독이 제임스 라이트맨 이다. 젠장.. 감독 이름이라도 미리 확인하고 볼 것을 너무 방심했다.









P.S) 제임스 라이트맨 은 툴리, 인 디 에어, 주노 의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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