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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여름 Jan 01. 2021

인 디 에어(2009)

Up In The Air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던 CF가 있었다. 국내 팔도 여행도 제대로 못한 거 같은데 미국 어디까지 가봤냐니. 그래도 몇 군데 가봤다고 나 여기 여기 가봤었네 하며 중얼댔던 기억이 난다.



 미국. 실로 광대한 나라다. 우리가 대륙이라 부르는 중국보다도 더 큰 나라. 지금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아직도 기회의 나라일지 모르는 그 미국. 1개의 주가 실은 각각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는 50개 주의 연합인 나라. 경험해 보았어도 그 끝을 다 체험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라.



 히키코모리조차도 공항까지 불러냈을 것만 같은 이 CF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설렘 가득한 여행을 꿈꾸게 했다.













 <인 디 에어>의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낭만 가득한 여행 대신 출장 업무로 비행기를 탄다. 1년 중 330여 일을 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전전하며 보낸다. 잦은 비행에 신물이 날법도 한데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라이언은 그게 싫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천만 마일을 모르겠다며 마일리지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은 이 비행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생활보다 더 황당한 건 라이언의 직업이다. 미국 각지의 회사를 찾아가 사람 하나 해고 못하는 겁쟁이 상사나 사장들을 대신해 대신 말을 전하는 '해고 전문가'가 그의 직업이다. 전국을 떠돌며 해고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라니.




밤에 잠이 옵니까?
How do you sleep at night?







 라이언은 자신에게 해고당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폭언을 듣는다. 해고 통지에 쏟아져 나오는 실직자들의 갖가지 반응 속에 간혹 어떤 말들은 감독이 라이언에게 '정신 차리고 똑바로 정상적으로 살아라'라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핸섬한 외모에 잘빠진 수트를 입고 VIP 서비스를 누리며 다니는 라이언의 모습은 그의 비정상적인 삶은 잠시 잊게 할 만큼 멋지다. 심지어 그는 남들에게 나처럼 가방 하나만 들고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떻겠냐는 강연을 하는 동기부여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늘을 떠돌며 사는 그의 옆에는 빈자리가 없다. 그저 주변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에겐 이성관계도 그저 가볍게만 느껴진다. 옆집의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던 여자나 호텔 바에서 만난 알렉스(베라 파미가)와 의 시작도 그저 경유지에서 생긴 짧은 만남인 것만 같다.








 그런 라이언에게 변화가 생긴 건 화상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신입 나탈리(안나 켄드릭)와의 만남에서부터이다. 나탈리에게 화상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주고자 시작된 원치 않았던 동행은 조금씩 라이언의 가치관을 변화시켜간다.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부정하는 라이언이지만 그의 모습은 어딘가 따뜻하다. 훈내 넘치는 외모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가 충분히 인간적이라는 점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남자친구에게 차인 나탈리를 알렉스와 위로해 주기도 하고 누나의 부탁을 받아 여동생의 결혼 이벤트를 위한 사진을 열심히 찍고 다니기도 한다. 해고 통지의 순간에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모습까지 라이언이라는 인물의 배경 설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극 중에서 라이언만이 캐릭터의 다각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비인간적인 화상 해고 시스템을 만들어냈던 나탈리도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쫓아 많은 걸 포기하고 온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머리로 만들어낸 효율적 시스템과 자신이 이상하는 인간관계와의 괴리감에서 나탈리 역시 흔들리게 된다.




 라이언은 점점 심경에 변화를 갖게 되는데 여동생의 결혼식 리허설에서 겁먹은 신랑을 설득하는 장면은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부조종사가 필요하지



Everybody needs a co-pilot.






 기대했던 중요한 강연에 선 라이언은 더 이상 자기가 하는 말이 진심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고는 자리를 박차고 알렉스를 찾아 나선다. 영화 속 극적인 연출 같지만 그만큼 라이언이 남들 앞에서 맘에 없는 소리나 내뱉는 거짓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알렉스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겠다. (직접 보는 재미도 있으셔야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천만 마일을 달성한 라이언. 어느새 그의 옆자리는 누군가를 위해 비워져 있다. 그토록 만남을 기다려왔던 기장과의 대화에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I'm from here' 이라고 답한다.



 선문답 같은 라이언의 대답 속에서 그의 생각 역시 구름 위의 비행기처럼 부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 디 에어>라는 영화에 대한 답을 하자면 아마 '잘 모르겠다' 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임스 라이트만 감독은 꾸준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지만 되려 그에게 답을 물어본다면 그 역시 '그야 잘 모르지'라고 답할 것만 같다.











 여기저기를 떠다니는 라이언이 탄 비행기처럼 사람들의 관계는 수없이 변하기도 하지만 그 다양한 관계들도 때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처럼 다 똑같이 작아 보이기도 한다. 항상 명확한 답과 숫자를 선호하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날이 선 질문과 차가운 목적지를 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방향성 때문일 것이다.




 다소 익숙해 보일 수 있는 전개를 보이지만 참신한 설정과 오스카 여우 조연상에 동시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안나 켄드릭 과 베라 파미가, 남우 주연상 노미네이트의 조지 클루니 의 연기, 그리고 제임스 라이트만 감독의 세심한 터치가 느껴지는 각본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저 높이 위로 올려놓았다.




 극중 해고되는 사람들과의 대화 장면은 실제 해고된 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따왔다고 하니 얼마나 영민한 연출인가. 다소 황당했던 설정에 이입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나도 저 극 중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하지만 어쩐지 두렵지 않았다면 중간에 조지 클루니가 JK 시몬스에게 건넸던 따뜻한 배려가 인상 깊었던 탓이다.







이 영화의 여운이 따뜻하다는 건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어도 좋을 영화라는 것. 그냥 요새 내 삶이 그렇더라. 화끈한 액션과 심장 쫄리는 스릴러보다 누군가의 따뜻한 한 마디가 더 좋아지는 그런 일상.






p.s - 다소 복잡한 은유 속에서 영화를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지만 곳곳에 삽입된 유머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



 라이언이 나탈리의 남자친구와의 통화를 듣게 될 때 늙었다는 말에 반응하는 장면, 알렉스가 자신의 이상향을 얘기하는 장면들이 위트 넘친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시키며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해서라는 라이언의 말에는 '어? 저거 난데' 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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