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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인생콘텐츠 May 12. 2019

설득의 하루

4월의 봄이 반짝이는 주말 아침.

벚꽃이 이제 마지막이야..하며 손짓을 한다. 

'다음주 비소식이 있던데...그럼 예쁜 벚꽃들이 또 다 떨어져버리겠지' 
아침 식사 후 산책 삼아 동네를 한바퀴 돌아야겠다 생각하고 준비를 서두른다.



하지만

눈만 뜨면 수학 공식 대신 먹고 싶은 메뉴를 읊는, 항상 졸리는 중2병에 걸린 아이가 잠이 덜 깬 상태로 주술같이 중얼거리는 말. "아..김밥이 먹고싶다. 집에서 만든거.." 

그 한마디에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 

화사한 핑크빛 벚꽃 대신 시꺼먼 김밥이 눈앞에 있다. 

이 와중에 쇼파와 한몸이 되어 주말내내 혹시 허리에 이상이 생긴건 아닌가..의아할만큼 장시간 꼼짝도 않는 한 사람이 있으니..

사랑스런 그는 더욱 사랑스럽게도 카톡..카톡..누군가와 열심히 카톡을 하고 있다. 

들여다보니 가족 단체톡에서 7월 아버님 생신을 맞아 여행 일정을 짜고있다.


그리고 카톡이 답답한지 이어지는 그룹통화. 스피커폰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여러명의 대화 내용. 

대화의 끝은 이렇게 남편의 답으로 맺어진다. 

"응..그런데 정말 같이 가실지 모르겠네. 항상 안 가셨으니. 만약 이번에 가시면 5년만인가? 

알았어. 

그럼 며느리보고 전화해서 아버님 설득하라고 해볼께. 다들 들어가 ~"


  ?


가족 모두 자신이 없으니 며느리가 결국 설득의 총대를 매는 이상한 논리로. 

며느리는 나른한 주말에 승부욕이 발동한듯 한마디 말도 없이 씩~ 미소지으며 손에 묻은 미끌거리는 참기름을 앞치마에 쓱쓱 닦더니 곧장 전화기로 향한다. 

나만 믿어봐 하는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아버님 ~~~~" 



그리고 설득의 4단계로 접어든다. 

1. 진심 어린 권유 

 늘 가족여행에 빠지셔서 아이들이 아쉬워했고 이제 아이들이 커가니 더더욱 함께가는 여행은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애들을 어릴적 키워주셔서 애정이 남다르시다. 

2. 선택의 여지를 제공 

여행지는 아버님이 정하세요. 산, 바다 중 어디가 좋을까요? 가신다는걸 전재 하에 장소만 계속 여쭤본다. 한참뒤 게가 맛있다던데..한마디 하신다. 바다로구나.

3. 흐름을 파악한다. 

주저하시는지 대화가 자꾸 다른 곳으로 향한다. 지난번 택배로 보내주신 쑥을 어떻게 차로 끓여서 먹으면 좋은지 그 방법과 효능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열심히 호응하며 듣는다. 10분 가량 듣다가 기회를 틈타 이야기한다. 쑥도 좋지만 며느리가 더 먹고 싶은게 바로 게라고..

4. 논리와 이성

바다로 좁혀서 구체적인 계획을 제안한다. 날짜. 장소. 교통편. 게는 주문진이 여기서도 가기 좋지.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긴 통화는 마무리된다. 



"들었지? 7월 첫째주. 주문진 1박. 게 먹으러!"

몇 시간만에 몸을 일으켜 그새를 못참고 김밥을 먹던 그는 한 옥타브 낮게 급변한 내 목소리에 놀랬는지 고양이가 생선을 먹다 들킨 표정이다. "터진것만 먹었어."라며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고 다시 핸드폰이 있는 쇼파로 향한다. 

"며느리 설득 성공." 

"대단!" "역시!" 카톡에 가족들의 감탄사 연발이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동기부여가 가장 힘든것이 가족이라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인권 운동가도 가정의 평화는 확신할 수 없고 

헬스 트레이너가 가족의 다이어트는 책임질 수 없고 

선생님이라고 자녀 교육은 완벽할 수 없으며 

커리어 컨설턴트도 남편에게는 일은 다 힘든거라며 그냥 참고 다니라고만 한다.


그리고 반대로 설득 당하기 쉬운 상대가 있다. 

주변에 흔하디 흔한 김밥가게를 두고 힘들여 주말에 김밥을 싸고있는 나부터 말이다. 아이로부터는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 말에도 쉽사리 설득당한다. 

가족여행건도 설득의 전략이 좋아서가 아니라 no라고 거절할 수 없는 며느리기에 가능한 설득이 아니였을까.

그러니 주말엔 쇼파와 일체되어 늘어져있지만 처세술에는 여우처럼 노련한 남편이 며느리 이용권을 쓴 것이겠지. 

뭐..전략에 말린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성공했으니 기분은 좋다. 

그리고 보상으로 이어지는 형님들의 발빠른 카톡.

"며느리 일 안하도록 

취사 시설없는 숙소 예약 완료."



얼마전 우연히 본 아이의 도덕과목 노트에 

존경하는 사람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여행때 달빛 아래 술 한잔과 함께 말씀드려야겠다. 주름진 얼굴이 환해지실 모습이 그려진다. 재지않고 쉽게 설득 당해준다는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지않을까..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벚꽃 대신 설득으로 가득찬 봄날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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